2월 6일 [연중 제4주간 수요일]
복음: 마르코 6,1-6
< 순간순간 판단하는 마음과 싸우라! >
한 농부가 도끼를 잃었는데 틀림없이 옆집의 젊은이가 훔쳤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옆집 젊은이의 거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길을 걷는 모양이나 말하는 목소리나 그의 일거일동이 다 자기의 도끼를 훔친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젊은이가 도끼를 훔쳤다고 단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그는 산에 갔다가 전에 잃었던 도끼를 찾아냈습니다.
며칠 전에 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방심하여 도끼를 그 곳에 두고 왔던 것입니다.
이튿날, 그는 또 옆집의 젊은이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이모저모 살펴보니, 길 걷는 모양이나 말하는 음성이나 그의 일거일동이 다 자기의 도끼를 훔친 사람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자신 안에 판단의 완전한 잣대가 들어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분은 하느님밖에 안 계십니다.
인생의 그 짧은 경험으로 어떻게 사람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판단은 그 사람이 완전하지 않으면 틀릴 확률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하는 이유는 그 판단이 틀릴 것 같아서가 아닙니다.
판단하면서 그 사람 안에 있는 잘못된 점을 찾아내기 때문입니다.
판단할수록 상대가 부정적으로 보이고 그렇게 판단한 상태에서 상대를 만나면 왠지 이미 껄끄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저 사람은 참 버릇없네!” 라고 판단해 놓고 “그래도 난 널 이해하고 사랑해!” 라고 말하는 것은 “그래도 요건 좀 바꾸면 좋겠네!” 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바뀌면 더 사랑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순수한 부모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물에 빠졌을 때
“네가 한 가지만 고치면 구해줄게!”라고 말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상대에게서 단점을 많이 찾아낼수록 그만큼 사랑하기는 힘들어집니다.
따라서 많은 판단을 내려 상대를 더 잘 안다고 여기게 되는 만큼 관계는 멀어집니다.
저도 가만히 보면 저에게 “난 너 잘 알아!”라고 한 사람과 지금도 관계가 긴밀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참 희한한 것이 모르는 사람과는 관계가 좋은데 서로 잘 알게 되면 더 많이 싸우게 되고 관계가 소원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더 끈끈해 지기는 하지만 결국 그렇게 오래 사신 분들도 하시는 말은 상대를 바꾸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장 잘 안다고 믿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라고 하십니다.
고향과 친척 집안만큼 그 예언자를 잘 아는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이미 성령으로 변화된 사람이기에 그들은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아는 것 안에서 바라보기에 위선적인 것 같아 보이거나 미쳤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고 하십니다.
그들의 교만이 컸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예수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에 못마땅해 합니다.
그 결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그만큼 축복을 덜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이 사례가 꼭 예수님에게만 해당하는 말일까요?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변할 수 있고 변합니다.
내가 안다고 믿어버리면 그 변화를 감당할 수 없어서 견디지 못합니다.
초등학교 때의 아이를 기억하여 그 모습만 가지고 시집장가 다 간 사람에게 “난 널 알아!”라고 한다면 “난 너와 친구 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누가 “난 널 잘 알아!”라며 바라보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판단을 많이 하면 불안해지고 외톨이가 됩니다.
우리는 이웃을 판단하는 것을 두려워해야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의 나자렛 사람들처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내 마음에서 판단이 저절로 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자신과 싸워야합니다.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합니다.
예수님도 간음한 여인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을 알 수 없듯, 사람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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