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복음: 마르코 5,1-20
< 자기 자신과 화해하라고? >
중국 어느 곳에서는 가마우지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다고 합니다.
가마우지의 목에 줄을 매서 강에 풀어놓습니다.
그러면 오리처럼 생긴 이 새들은 물속으로 들어가 손바닥만한 물고기를 입에 한 가득 잡아 가지고 옵니다.
물속에서 1분 이상 빠르게 헤엄쳐 다니면서 물고기를 잡는데 그것을 자신이 먹지 않고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목에 묶여있는 줄 때문입니다.
숨을 쉴 정도만 남겨놓고 줄을 매어놓으니 물고기를 삼키지 못해 주인에게 바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도 우리를 이렇게 자신의 종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죄가 원하는 재물과 쾌락과 명예 등을 잡아 죄의 주인에게 바칩니다.
주인이 배부른 것이지 내가 배부른 것이 아닌데도 나는 주인이 기뻐하는 것처럼 기뻐합니다.
이것이 죄의 종살이입니다.
나는 돈이 있어도 없어도 그냥 같은 나입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죄를 구별하지 못하여 종살이합니다.
그럼 죄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요?
목의 줄을 끊고 탈출해야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스스로 자신의 줄을 끊을 수는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자신을 해방시켜 줄 누군가가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줄을 끊어주러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목줄을 끊어주시면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신부님은 고해성사 중에 “자신과 화해하세요!”란 말을 한다고 합니다.
참으로 친절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는 죄와 화해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죄는 화해할 수도 없고 길들일 수도 없습니다.
가마우지가 자신을 이용하는 주인과 화해해야 무엇 하겠습니까?
여전히 죄의 종살이만 남습니다.
죄는 창세기에서는 뱀이고 탈출기에서는 파라오로 상징됩니다.
그것들의 노예 생활하는 것이 죄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그것들과 화해하라고 우리를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탈출시키려고 불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야 한다고 하시고 자신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신’이 우리를 종살이시키는 죄의 원인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길들이신 분이 아니라 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게라사의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해주십니다.
그 마귀 들린 사람은 무덤에 살았습니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입니다.
악에 지배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미 그 마귀 들린 사람을 통제해보려고 시도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 이어서 말합니다.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하였다.”
그 사람 안에 있는 마귀가 망가뜨리는 것은 그 사람 자신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자아도 우리 자신을 망가뜨립니다.
우리 안에 분명 ‘원죄’가 있다고 가르치는데 원죄는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절대 우리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치유해 주셨지만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돼지가 죽는 것을 보고 더 이상 피해보고 싶지 않아 예수님을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참으로 죄이고 마귀 들린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자신들이 섬기는 마귀의 나라가 무너지기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욕망과 화해하며 살고 싶은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이렇게 자아와 화해하라는 식으로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는 방식은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오시는 믿음이란 우리가 하느님이란 사실입니다.
내가 주님의 힘으로 내 자신을 이기려고 하지만 끝까지 내가 사람이라고 믿어버리면 여전히 자아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가 사람이라 믿으면 그 믿음의 굴레 때문에 죄를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탈출기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탈출합니다.
그런데 그 영역이 여전히 이집트 땅이라면 어떨까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시나이 산은 당시 지리적으로는 여전히 이집트 땅이었습니다.
광석이 많이 나기 때문에 군사들이 몰려 있던 곳이었습니다.
만약 탈출의 목적지가 그곳이라면 여전히 이집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자신이 인간이라 믿으며 죄를 이겨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믿음은 다릅니다.
모세는 시나이 산이 아닌 가나안 땅으로 백성을 이끌었습니다.
파라오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우리 목적지가 되어야합니다.
그 목적지는 죄를 이기는 인간이 아닌 죄와 무관한 하느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렇게 믿어야만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나는 하느님의 자녀다. 나는 하느님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어느 새 죄의 종살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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