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인 교사가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은 내가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게요. 여기 제 손에 연필이 있습니다. 두 눈으로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연필은 존재합니다. 여기에 책상이 있습니다. 이 책상 역시 두 눈으로 볼 수 있기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은 어디에 있나요? 신을 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선생님께서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어갑니다.
“보세요. 하느님은 없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한 학생이 “선생님, 그러면 선생님의 뇌는 어디에 있어요?”라고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이 머릿속에 있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학생은 말합니다.
“선생님 뇌는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잖아요. 따라서 선생님은 뇌가 없는 분이네요?”
우리는 자기 뇌를 직접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뇌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기억, 생각, 판단 등을 통해 뇌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과학과 의학을 통해 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역시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볼 수 없다고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마음,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 등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깨닫게 됩니다. 여기에 기도와 묵상, 성경,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성사를 통해 하느님이 계심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은 처음에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라고 말하면서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예수님께서는 하시는 말씀과 행적의 속뜻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을 보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겉모습만을 보고서 섣부르게 판단한다면 또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2000년 전 감히 예수님께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똑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마디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진리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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