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연중 제2주간 토요일]
복음 : 루카 10,1-9
< 내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없게 하라 >
우리가 잘 아는 문둥병자들의 성 다미안 신부님은 지옥과 같은 문둥병자만 사는 몰로카이 섬에 들어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했지만 처음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까지 병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응? 하느님의 사랑이 무슨 말이냐?
하느님께 사랑이 있다면 우리들과 같이 병에 걸려 시달리며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버려둘 리 없지 않은가?”
“흥! 감사하라고?
그것은 당신 같은 건강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잠꼬대 같은 소리란 말이야.”
다미안 신부님은 어느 순간부터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문둥병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그들의 영혼을 깨우치게 하소서.”
어느 날 뜨거운 물을 발등에 쏟았을 때 감각이 없는 것을 느끼고는 주님께 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몸이 썩어갈수록 그의 기쁨은 더 커졌습니다.
강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나를 보시고 나의 얼굴과 손과 신체를 보시고 나의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을 보십시오.
그리고 나의 영혼을 보십시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나의 영혼은 더욱 정화되어 감사에 넘치고 있지 않습니까?
공중에 구름이 어떻게 되던지 그 속에는 푸르고도 맑은 창공이 있음과 같이 나의 육체는 어떻게 되던지 그 속에는 영원히 평화로운 영혼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참 기쁩니다.”
그 이후로 수많은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다미안 신부님은 문둥이로 죽었으나 그의 동상은 문둥이들의 손으로 깨끗한 얼굴로 만들어졌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복음전파자가 있을 수 있을까요?
나병이 걸린 다미안 신부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면 누가 하느님이 계심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짜증을 내는 식의 복음 선포는 폭력입니다.
복음 선포는 말 그대로 기쁨을 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쁜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홀로 계셔도 행복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당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셔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 행복을 나누고 싶어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하느님의 행복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물론 인간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질 때 매우 아파하시기는 하지만 또한 구원되어 당신의 가족이 되는 인간들에게서 오는 기쁨으로 만족하십니다.
하느님은 당신 행복을 위해 인간을 이용하지 않으시는 분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은 이러한 자세를 겸비하도록 가르치십니다.
먼저 행복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 즉 행복을 전하는 일인데 그 행복은 나의 행복을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서 흘러넘치는 부분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지라도 나의 행복에는 지장이 없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이 뜻입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전할 때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를 주라는 것입니다.
그 평화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지만 나를 거쳐서 이웃에게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받은 평화를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가 주는 평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내 평화가 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 평화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받아들여도 평화롭고 평화를 거부해도 평화로운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하신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18)란 말과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란 말도 같은 뜻입니다.
사랑은 나에게서 나감으로써 내가 행복한 것이지 받는 대상의 반응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수돗물은 그 물이 어떤 곳으로 흘러가건 그 수도꼭지는 물로 가득 차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기분이 나빠진다면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나의 행복을 채우려는 이기적인 마음일 뿐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행복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신 것 하나만으로 후회 없이 기쁘십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참 사랑은 사랑하는 것 자체로 기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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