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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1-24 조회수 : 361

1월 24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 
 
복음 : 마르코 3,7-12 
 
< 자신의 감정에 민감하라! >

저는 매우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전기가 중학교 2학년 때 들어왔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누리는 것들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창피하지는 않았습니다. 
촛불로 공부를 해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기가 들어오면서 조금씩 부끄러움을 알아갔습니다. 
중학교 때 도시락 반찬이 항상 김치여서 창피했습니다. 
어머니는 좀 업그레이드해서 어묵만 싸 주셨습니다.  
 
전 조금 자랑스러웠지만 누군가 “너희 집 어묵 공장이니?”라고 했을 때 창피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수원으로 다녔습니다. 
잠바가 없어서 겨우내 한 번도 빨지 않아 시커멓게 된 어머니가 누군가로부터 얻은 여성잠바만 계속 입고 다녔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말은 안 해도 여자 잠바 하나로 겨울을 나는 저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대학에 가서 수백 명이 모인 강의실에서 출석을 부를 때 다른 과 여자아이들이 제 이름을 듣고 깔깔대며 웃을 때 창피했습니다. 
 
내가 창피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를 창피하게 만드는 사람들과는 친해지지 못합니다. 
나를 창피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작업은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나의 감정에 상처를 입지 않는 연습입니다. 
내가 상처 입는다는 것은 곧 나를 상처 입히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해야 행복합니다. 
그런데 사랑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온전히 보호하지 못한 나의 탓에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시면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가깝게 다가가지 않으시고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십니다. 
밤이나 새벽에 혼자 기도하시고 배 한 척에 타시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셨습니다. 
아마 이것에 기분이 나빠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까지 다 감수하시며 예수님께서 꼭 지키시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당신의 ‘감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외칩니다. 
이것은 당연한 찬양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런 영을 지닌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찬양에 기분이 좋아지셨다면 악령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감정이 외부의 영향에 의해 휘둘리면 사랑하기 매우 어렵게 됩니다.  
 
만약 돈 때문에 기쁘고 돈 때문에 슬프다면 그 사람은 돈에 지배받는 것입니다. 
가진 돈이 다 사라지면 너무 아파서 더 이상 살 힘이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지배받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에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면 그 사람에게 어떠한 좋은 영향도 미치지 못하고 그의 소유가 되어버립니다. 
그의 종이 되어 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내가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거든 그 대상으로부터 감정을 독립시켜야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당신의 감정을 지키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마련하도록 하신 ‘배’가 바로 그 상징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배 안에서 타인들이 만지는 손에서 멀리 떨어져있을 수 있어야합니다. 
 
한 저명한 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평소에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은 나를 죽이는 사람이다”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가 하루는 의학협회에 나가서 논문을 발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참 발표하는 도중 한 의사가 일어나서 그의 논문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만만하게 논문을 발표하던 그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난 나머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를 비난한 사람을 큰 소리로 공격하다가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나를 죽이는 것은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타인의 말에 화가 나도록 내 자신을 방치해 둔 자신이 스스로를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남이 나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지 못하도록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합니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역시 ‘기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동산에서는 감정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에 지배를 받게 되면 십자가를 감당해 내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래서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감정을 이기시고 당당하게 그들의 손에 잡히십니다. 
그들은 이제 예수님을 때리고 모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도 예수님의 감정은 평정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온유함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십니다. 
이 온유의 힘은 기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이 평정심입니다. 
이렇게 감정을 지킬 수 있어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감정이 감사와 사랑으로 채워진 온유한 마음인지 항상 민감하게 살펴야합니다.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 나의 감정이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조금 멀어져서 더 수련하고 다시 다가가는 편이 낫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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