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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23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1-23 조회수 : 292

뇌 과학자들이 사람을 자기공명영상 장치 스캐너에 집어넣고서 자선이나 범죄행위 등 도덕적 의미와 관련된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뇌 부위 중에서 감정처리를 하는 부위가 곧바로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도덕적 의미가 전혀 없는 사진에는 별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도덕적 직관을 타고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도덕적 직관을 거부하게 되면 이 세상 안에서 올바른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기도 힘들어집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도덕보다는 지금 자신의 영리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도덕이 밥 먹여 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자신의 본성을 어기게 될 때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결국 올바르고 착하게 사는 이유는 바로 ‘나’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나’를 위한 행동이 우리를 위한 것이 되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늘 위선적인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경고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자기 자신만을 드러내는 욕심과 이기심이 위선적인 모습으로 변화시키며, 이는 곧 나를 파괴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치유의 은총을 베풀려고 하자 곧바로 고발하려고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예수님을 어떻게 옭아맬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율법은 사람을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또한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 행하는 사랑의 실천이 율법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도덕적인 판단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고발해서 자신들의 옳음을 드러내고 싶었고, 예수님을 없애고 자신들이 높아지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바리사이들의 대응이 인상 깊습니다. 바리사이들은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합니다. 사실 바리사이와 헤로데 당원들은 서로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견을 공유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 무관심을 갖게 되는 순간, 그들은 악한 마음을 서로 공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대신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이 바로 나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악을 미워하고 선을 실천해야 하는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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