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월 19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1-19 조회수 : 282

본당 신부로 있을 때, 한밤중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본당 신자가 지금 위급하다면서 병자성사를 청하는 것이었지요.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병원 응급실에 가서 병자성사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평소 낮에 보았던 병원과는 다른 또 다른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한밤중의 응급실은 거의 전쟁터 같더군요. 급한 환자들도 많이 들어오지만, 술을 많이 마시고 다쳤는지 의료진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사람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하긴 종종 응급실 의료진에 대한 폭행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지요. 그런데 그 모습을 직접 보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고쳐줄 의료진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는 환자의 모습을 보고서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아파서 정신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행동이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치료를 잘 받으려면 자신의 모습부터 바꿔야 합니다. 즉, 의료진을 믿고서 자신을 맡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믿지 못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남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인 레위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 가서 음식을 잡수셨지요. 그 자리에는 다른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서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앞 다투어 말합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마치 의사가 병자들에게 다가갔다 해서 뭐라고 하는 비난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 치료가 필요한 이들과 함께 하고 있을 뿐인데, 그들은 그 치료 자체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비난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도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들 역시 영적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었지요. 하지만 이들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병이 없다면서 깨끗하게 치료해주실 의사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스마트폰을 생각해보십시오. 처음에는 외형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하지만 일단 구입하고 나면 외형에 대한 관심이 떨어집니다. 이 스마트폰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에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외적인 것, 그것은 순간일 따름입니다. 순간의 만족이 중요할까요? 아닙니다. 영원한 만족을 추구해야 합니다.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은 영적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만족을 바라는 겉모습만을 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과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서 비난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행동들은 모두 영원한 만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주님께 내 모든 것을 의탁하면서 영적 치료를 위해서 노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