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검색 엔진인 ‘구글’에서 검색 1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일까요? 자그마치 18억 2,000만 건 검색되었던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바로 ‘춤’(Dance)이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늘 춤을 췄습니다. 옛날 벽화에도 춤추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 당시는 지금보다 편하고 편리한 삶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더 힘들고 피곤했을 텐데도 그들은 춤을 췄습니다.
사실 뇌에는 리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춤에 대해서 반응을 합니다. 아기들을 보십시오. 리듬이 뚜렷할수록 움직임이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난 춤을 못춰요. 난 몸치에요.”라는 말을 합니다. 본능적으로 춤에 대해 반응하는 몸인데도 말이지요. 왜 그럴까요? 바로 불확실성과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내가 춤을 잘 출 수 있을까 라는 불확실성, 그리고 남이 내 춤을 어떻게 평가할까 라는 부끄러움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본성상 하느님과 가까이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불확실성과 부끄러움이 들어갑니다. 하느님이 보이지도 않고 또 내게 말하지도 않는데, 이렇게 불확실한 존재에 대해서 믿을 수 있냐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라는 부끄러움이지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데도 분명히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용기를 통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으며, 이 용기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아주 인상 깊습니다. 많은 군중으로 인해서 앞에 나아갈 수 없게 되자, 주님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서 들것을 달아서 내려 보낸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장애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러나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장애물에 멈춘 것이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모든 방법을 동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용기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이런 용기를 낼 수 있는 행동도 할 수가 없었겠지요. 그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주셨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데 많은 장애물이 우리 앞에도 있습니다. 이 장애물을 어떻게 하십니까? 믿음에서 나오는 용기를 통해서 그 장애물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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