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운전이 가장 위험하다고 하지요.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의 20% 이상이 졸음운전 때문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만약 시속 100Km로 운전하다가 1초만 깜박 졸면 무려 약 28m를 무의식으로 운전하는 셈입니다.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졸음이 몰려오면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라디오도 켭니다. 그래도 졸리면 졸음쉼터나 휴게소에 들어가서 잠시 쉬었다 갑니다.
지난달의 일이었습니다. 지방에 강의가 있어서 직접 운전을 하는데 너무 졸린 것입니다. 평소의 습관처럼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라디오를 틀었습니다. 라디오 채널을 돌려서 신나는 댄스 음악을 들으려고 했는데 우연히 클래식 방송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잠이 확 달아나는 것이 아니겠어요?
솔직히 저는 음악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특히 클래식은 더욱 더 저와는 상관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율에서 알 수 없는 깊은 울림을 느끼면서 잠이 달아나더군요. 클래식 연주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떤 악기로 연주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제목도 전혀 알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참 좋다.”를 연발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클래식 음악은 운전 중 저의 잠을 깨우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무조건 졸리고 따분한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클래식을 잘 몰라도 듣는 것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믿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완벽하게 주님을 알아야만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많이 아는 만큼 믿음에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잘 몰라도 충분히 믿을 수 있습니다.
어떤 나병환자가 자신을 깨끗하게 해달라는 청을 합니다. 주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면서 깨끗하게 해주시지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보통 믿음을 보시고 치유를 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병환자의 믿음이 컸을까요? 그는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도 따르지 않을 정도로 믿음이 크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나병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주님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당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랑에 주목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비록 믿음이 부족한 우리라도 사랑에 주목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편안함을 느끼고, 주님을 잘 몰라도 “참 좋다.”를 입에 달면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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