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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1-16 조회수 : 361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복음 : 마르코 1,29-39 
 
< 타인을 과도하게 허용하는 것은 나에 대한 학대다 >

며칠 전에 어떤 강의에 갔습니다. 
요즘엔 강의를 조금 자제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보다는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밤에 하는 것은 거의 안 나가는데 어쩌다가 나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다음번에 또 와 달라고 부탁하기에 저는 매몰차게, “안돼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도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매몰찼던가!’
    
약간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왠지 강의에 휘둘리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고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어쩌면 ‘사제가 복음을 전하는데 시간을 써야하는 거 아닌가?’라며 서운해 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오는데 가끔 제가 강의 하는 곳이면 찾아와 도와달라고 청하시는 분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불쌍하신 분이라 항상 도와드렸습니다.
이번에도 인사를 드린 다음 또 도와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통화만 하면 되니까 전화번호까지 알려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은 다 알려드리는데, 이번에도 
“전화번호는 안 돼요. 다음에 만나면 또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저의 마음도 아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지킬 수 있는 내 자신이 있어야 내어드릴 내 자신도 존재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저에게 “이기적이다.”라고 충고하기도 합니다. 
“혼자 천당 갈 거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도 제가 이기적이고 교만한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저를 더 먼저 챙겨야 나중에라도 누군가에게 더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음을 압니다. 
제가 쓰러지지 않아야 쓰러지는 누군가를 잡아줄 수 있습니다. 
함께 비틀거리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많은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좋은 가르침을 주실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께서 타인들이 당신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밀어붙일 때 배를 타고 물가에 들어가서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침해할 수 없는 시간을 항상 찾으시고 기도하는 시간을 절대 빼앗기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은 내가 먼저 침해받지 않아야 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이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보충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학대하지 않도록 지키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학대하지 않습니다.  
 
내가 휘둘리고 있다고 느끼면 몇 년을 끊고 내가 힘을 길러서 몇 십 년을 도와주는 것이 낫습니다. 
나의 능력을 알아야합니다. 
내가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빼앗고 괴롭히는 사람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내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내가 되는데 시간을 투자해야합니다. 
그 시간까지 빼앗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이 있습니다. 
그 중 ‘칭찬’도 있습니다. 
어제 복음에서 악령들은 예수님께 좋은 칭찬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역시 그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 제자들에게는 당신을 널리 알리기를 원하셨지만 마귀들에게는 당신의 정체를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칭찬이 되기 때문입니다. 
칭찬을 많이 들으면 그 사람들에게 휘둘리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시간과 계획에 누군가를 맞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시간과 계획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기적이라고 할 수는 있을지라도 단호하게 그들을 떠납니다.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제자들에 홀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나에게 시간을 빼앗으려거든 차라리 돈을 빼앗으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침해하게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 먼저 독립적인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나에게 자유를 줄 줄 알아야 타인에게도 자유를 보장해주는 사람이 됩니다.  
 
타인이 나를 지나치게 침해하게 하면 나도 그 대가로 다른 사람을 침해하는 사람이 됩니다. 자신에게 먼저 잘 해 주어야 타인에게도 잘해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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