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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1-10 조회수 : 400

1월 10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루카 4,14-22ㄱ 
 
< 인간, 종속적인 존재 >

한 청년이 위대한 항해사가 되는 꿈을 안고 세계를 횡단한 유명한 한 항해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는 그 항해사에게 많은 질문을 쏟아 부었습니다. 
특별히 항해를 잘 하기 위한 방법으로 바람의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장님, 저에게 바람에 대해 아는 대로 설명해 주십시오.” 
“... 바람? 잘 모르겠는데?”  
 
“아니, 위대한 선장님께서 어떻게 바람에 대해 잘 모르실 수가 있습니까? 
바람에 대해 잘 알아야 하는 것은 항해사의 기본이 아닙니까?” 
“글쎄, 잘 모르겠네.”  
 
그래도 계속 다그치자 그 항해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난 바람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고 어떻게 불게 되고 어느 방향에서 불어올지 전혀 예상도 할 수가 없네.... 
다만 불어오는 바람을 보고 언제 닻을 올려야 하고 언제 닻을 내려야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바람과 같아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성령의 이끄심에 어떻게 잘 순종하느냐 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다시 돌아오셨고 그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그리고 이사야서에 예언된 당신의 사명을 읽으신 다음 바로 이 자리에서 그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왜 예수님께서 미리 복음 선포를 하시지 않고 나이가 서른이 되실 때까지 기다리셨을까요? 
더 먼저 복음 선포를 시작하셨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즉, 성령님께서 당신에게 내리기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성령님을 받는다는 것이 곧 어떠한 소명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언제 성령님이 예수님께 내렸을까요?
물론 영원으로부터 성령님과 함께 계셨지만, 특별히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님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 성령님은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고 또 오늘은 나자렛으로 이끌고 앞으로는 예루살렘 골고타 언덕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기름이 곧 성령님의 상징입니다. 
세례 때나 견진 때, 혹은 병자성사 때 기름을 바르는 것은 곧 성령님의 임하심을 상징하는 성사적 행위입니다. 
그리스도란 곧 그리스어로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이고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입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세례와 견진을 받으면서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이니 모두 작은 그리스도들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지 못해도 그 바람에 잘 순응할 줄 아는 사람이 훌륭한 항해사라면 우리 또한 성령님의 이끄심에 잘 순응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야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란 성령님을 받는 동시에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느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은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받습니다. 
마치 자녀가 아닌 머슴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는 결국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를 요구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큰 멍에를 짊어지는 것처럼 생각 됩니다. 
이전에 하던 것들도 이제는 맘대로 할 수 없게 되고, 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성령님이 이끄시면 자신을 버리고 그 소명을 따라야합니다. 
마치 머슴살이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동시에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받게 됩니다. 
성자께서도 성령님을 받는 동시에 인류 구원의 소명을 부여받고 오늘 그것을 선포하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무엇 하나에게는 종속되어야 하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즉, 죄의 노예가 되느냐 하느님의 노예가 되느냐의 갈림길에 있는 것입니다.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듯이 누구나가 한 주인만을 선택하게 됩니다. 
어떤 누구도 이 선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안 믿고 자신은 자유롭게 산다고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다른 무엇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혼자 독립적으로 우뚝 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상대가 없이 사랑을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도 성자와 성령님이 없이는 온전할 수 없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인간도 하느님 없이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무엇에든 종속되어야 하는데 바로 하느님의 머슴이 되고 그 분이 보내시는 성령님의 이끄심대로 소명을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오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종으로서 당신 사명을 성령의 힘으로 수행하게 되어 결국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소명에 동참함으로써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되는 삶이 무엇인지 누구나가 조금씩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종속되어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힘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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