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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1-09 조회수 : 429

1월 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


복음: 마르코 6,45-52 

 
우리도 매일 물 위를 걷는다 
 
‘연탄길 3’에 소개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들’이란 사연을 간추려봅니다. 
 
오늘은 진호 생일입니다.
진호는 문방구에서 로봇을 사 달라고 엄마에게 조릅니다.
그러나 엄마는 나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호 동생이 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호는 엄마가 동생만 사랑해 준다고 섭섭해 합니다. 
 
“엄마는 맨날 태호만 좋아해. 나는 하나도 안 좋아하고.” 정희씨는 진호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냐, 진호야. 엄마가 우리 진호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럼 빨리 로봇 사 줘. 내가 어제 문방구 아저씨한테 물어봤는데 그 로봇이 하나밖에 안 남았대.
다른 사람이 먼저 사 가면 어떻게 해. 빨리 사 줘.” 
 
정희씨는 무작정 보채는 진호를 달래보려 했지만 진호는 막무가내였습니다.
다른 날도 아니고 생일날 아이한테 상처를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호를 잠자는 동생 곁에 두고 가자니 진호가 원하는 로봇이 어느 것인지를 정희씨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아직 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진호 손에 큰 돈을 들려 문방구에 혼자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정희씨는 하는 수 없이 거실에서 잠자는 태호를 혼자 남겨두고 진호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십 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거린데, 그 사이에 깊이 잠든 태호가 깨지는 않을 거라고 정희씨는 생각했습니다. 
 
로봇을 손에 들고 문방구를 나오는 진호는 큰 기쁨에 콧구멍까지 벌쭉 벌어졌습니다.
너무 좋아 쿡쿡 웃고 있는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정희씨 얼굴에도 활짝 봄꽃이 피어났습니다. 
 
정희씨는 진호 손을 꼭 잡고 연립주택 골목을 털레털레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 정희씨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정희씨가 살고 있는 연립주택의 3층 창문 밖에 이제 다섯 살 된 태호가 매달려 울고 있던 거였습니다.
정희씨는 당장이라도 그 자기에 털썩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태호는 베란다 밖으로 나와 있는 화분 받침대의 쇠파이프를 양손으로 간신히 붙들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쇠파이프를 두 손으로 꼭 붙든 태호는 창문 아랫 벽에 나 있는 작은 틈 사이로 발 한 쪽을 가까스로 끼우고 힘겹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태호의 울음소리는 두려움에 덜리고 있었습니다.
간신히 마음을 수습하고 3층 계단을 헐레벌떡 단숨에 뛰어 올라가 대문에 열쇠를 끼우는 정희씨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갔을 때, 창 밖 화분대에 매달려 겁에 질려 울고 있는 태호의 머리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베란다에는 태호가 딛고 올라선 식탁 의자가 보였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태호가 창밖으로 엄마가 오는 걸 보려고 거실에 있던 식탁 의자를 베란다까지 끌고 나갔던 거였습니다. 
 
신발을 신은 채 거실로 들어선 정희씨는 석고상처럼 몸이 굳는 것 같았습니다.
무시무시한 공포가 온몸을 엄습해 왔습니다.
정희씨는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미소를 지으며 태호 쪽으로 양팔을 내밀었습니다. 
 
“태호야, 엄마가 가서 안아줄게. 꼭 붙들고 있어, 알았지?” 
 
엄마의 목소리를 들은 태호는 떠나갈 듯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습니다.
정희씨는 한 걸음 한 걸음 태호가 매달려 있는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거의 다가가 태호의 손을 낚아채려는 순간 태호는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창 밖 아래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태호의 비명 소리에 정희씨는 아주 잠깐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터질 듯한 울음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왔습니다.
119구조대의 모습도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태호야... 태호야...” 
 
정희씨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미친 듯이 태호 이름을 부르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습니다.
3층에서 떨어진 태호는 구조대원의 품에 안겨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태호는 얼굴 한쪽에 피멍이 들어 있었고, 오른쪽 팔을 잘 가누지 못했습니다.
정희씨는 태호를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우리 태호, 괜찮아? 우리 태호 정말 괜찮은 거지?”
그때 가까이에서 울고 있던 진호가 고개를 푹 떨군 채 정희씨에게 다가왔습니다.
진호는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엄마를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엄마, 미안해. 나 때문에...”
“괜찮아, 진호야. 괜찮아...” 
 
잠시 후, 정희씨는 태호를 데리고 119구급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근처 병원으로 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태호는 오른쪽 팔꿈치에 금이 갔을 뿐 다른 곳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팔에 깁스를 하고 병원에서 며칠 동안 안정을 취하면 좋아질 거라고 담당 의사는 말했습니다.
정희씨는 그제야 마음 놓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습니다.
후회와 안도감으로 목이 꺽꺽 막혀왔습니다. 
 
그토록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에서 태호가 무사할 수 있었던 건 동네 아주머니들과 진호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진호는 급한 마음에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위아래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들을 모두 다 불러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저마다 장롱 속에 있는 두터운 솜이불을 몇 개씩 가지고 나왔습니다. 
 
태호가 떨어진 땅바닥 위에는 열개도 훨씬 넘는 솜이불이 아주 두텁게 쌓여 있었습니다.
천만 다행히도 태호는 그 솜이불 위에 다리부터 떨어져서 무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십니다.
사람이 살아있으면 손과 발을 움직여서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으면 물을 먹고 가라앉고 맙니다.
물 위를 걷는다는 것은 에너지가 충만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끌어 다니는 중력과 삼켜버리는 물결 위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는 분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공기 중에 떠 있으려면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에너지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늘을 나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온전한 인간의 모델로서 이 세상의 끌어당김을 이길 수 있는 에너지, 즉 죄를 이길 수 있는 에너지를 아버지로부터 얻는다는 것을 오늘 보여주십니다.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도 에너지를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면, 흙에서 온 우리들이야 이 세상의 어두운 유혹 위에 서 있기 위해서는 얼마나 기도시간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죄를 이기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으면 상관없겠지만, 이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으면 시간 나는 대로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발아래 놓고 살고 싶다면 예수님의 모범대로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진호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어른들을 불러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이 기도하는 시간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바라보고만 있었다면 진호는 동생을 잃고 평생 죄책감에 살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도움을 청하러 바삐 움직였습니다. 
 
그 덕에 중력의 공포로부터 동생을 구할 수 있었고 가정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우리도 이렇게 절박하게 기도의 중요성을 안다고 한다면 기도를 하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저는 오늘 오전에 시간이 남아 기도를 뒤로 미루고 조금 게으름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러 성당에 갔는데 갑자기 아침부터 손님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녁이 될 때까지 기도할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당장 물 위를 걸어야 하는데 기도하지 않았다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기도하지 않으면 내 동생이 위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누가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내 가족이 난간에 매달려 있다면 지금 당장 기도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루를 살기 이전에 그 하루를 살기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이런 절박감만 조금 있더라도 아침기도를 거르고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마 밥은 안 먹어도 기도는 하고 하루를 시작할 것입니다.
항상 내 앞에 건너야 할 바다가 있음을 생각하고 하루를 시작합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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