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그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인간관계’라고 합니다. 그만큼 인간관계란 쉽지가 않다는 것이지요.
언젠가 누군가와의 갈등으로 지금 너무 힘들다는 한 자매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좋은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자기를 보려고도 하지 않는답니다.
저는 대화를 어떻게 나눴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것이 겁나서 용기를 내서 대화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직접 만나는 것이 힘들면 전화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이 역시 자신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분께서는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신부님, 카톡이나 문자는 안 될까요?”
안 될 이유는 없겠지만 직접 대화하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은 본인의 적극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렇게 계속 뒤로 물러난다면 어떻게 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뜨릴 수가 있겠습니까? 과연 하느님께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해주실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몫은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대신 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한 기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사람을 아무리 만나도 지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지쳐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도 따를 수가 없게 됩니다.
외딴 곳에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장정만도 오천 명이 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얼마나 피곤하셨겠습니까? 저 같으면 이들이 알아서 집으로 돌아갔으면 했을 것 같습니다. 제자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이들을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
주님께서 알아서 해주시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행하라고 하십니다.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는 그 모두가 배불리 먹기에는 턱 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들의 봉헌이 있었기 때문에 놀라운 기적이 가능했습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알아서 해달라는 청보다는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주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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