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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1-07 조회수 : 373

1월 7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복음: 마태오 4,12-17.23-25 
 
 < 들꽃 >

 
‘연탄길 3’에 소개된 ‘민들레 할머니’입니다.  
 
한 할머니가 작은 손수레에 헌 종이 박스를 한가득 싣고 고물상 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한여름 무더위에 할머니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밭이랑처럼 주름진 할머니 이마에는 송글송글 구슬땀이 맺혀 있었다. 
 
길을 가던 할머니는 잠시 멈춰 서서 누군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시선이 멈춘 곳에는 어떤 할아버지가 있었다. 
병색이 짙어 보이는 가엾은 할아버지는 길 한쪽에 아무렇게나 누워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낡은 수레 위에는 헌 종이 박스 몇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쳐 잠든 할아버지의 손 위에는 껍질째 먹던 참외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쯧쯧 혀를 차며 자신이 주워 모은 종이 박스 한 웅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종이 박스들을 할아버지의 가벼운 수레 위에 올려놓았다. 
작지만 커다란 사랑을 그렇게 남겨두고, 할머니는 민들레같이 환하게 웃으면 그 곳을 떠났다. 
 
송정림씨는 ‘내 인생의 화양연화’(69)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풍란이라는 난초가 있습니다. 
풍란은 꽃씨나 포기가 바람에 날아다니다가 나무줄기나 바위에 뿌리를 내리면 그곳에서 꽃을 피우고 살아가지요. 
그 꽃씨는 바람 속을 날아다니며 자신이 뿌리 내릴 곳을 찾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풍란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허공을 돌며 꽃을 피울 공간을 찾아 헤매는 존재가 아닐까요?” 
 
이철환 작가는 민들레 할머니의 이야기를 마무리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들꽃은 아무 곳에나 피어나지만, 아무렇게나 살아가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뿌리를 내리느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어떻게’ 살아내고 있느냐인 것입니다.  
 
민들레 할머니는 당신이 있는 곳에서 당신이 하실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작지만 아름다운 민들레꽃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처지는 바람 따라 떠돌아야 하는 입장이 됩니다. 
왜냐하면 세례자 요한이 잡혀서 분위기가 뒤숭숭하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미워한다면 그가 증언하던 예수님에게 다음 화살이 돌려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변두리로 돌기 시작하십니다.  
 
갈릴래아 지방은 사실 유다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민족으로 ‘억지로’ 인정해주는 변두리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그 곳에서 대부분의 복음전파를 하였고 그분의 명성은 오히려 유다지방보다는 외국인 ‘온 시리아’에 퍼졌다고 복음은 증언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이스라엘의 중심에 가서 복음을 선포할 수 없다고 한탄하시지 않습니다.
당신 있을 수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최선을 다하십니다. 
병자를 고쳐주시고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유다의 땅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고 맙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 즉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 굳이 뿌리내리려 하지 않습니다.  
 
작년 이맘 때 일입니다
저는 입학동기 신부님이 있는 성당에서 주일 주일미사를 지내고 왔습니다. 
주일미사를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어 매우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예전 본당에 있던 분이 어떻게 아셨는지 제가 주례하는 미사에 와서 저에게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느낀 그 분의 표정엔 ‘이제 본당이 없으니 떠돌아다니시며 미사를 하는군요.’ 라는 안타까운 감정이 들어있었습니다.  
 
물론 미사 할 때 약간 남의 집 신세지는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 
신자들과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미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감사합니다.  
 
자리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어떤 자리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뿐입니다.  
 
성령의 바람은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 바람이 보내주는 곳, 그러니까 지금 있는 바로 이 자리가 ‘꽃자리’인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빛이 될 수 없으면 어느 곳에서도 빛일 수 없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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