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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4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1-04 조회수 : 264

1950년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가 하나의 실험을 했습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길이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끈들을 준비하고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실험 참가자들은 애쉬가 보여주는 끈이 기준으로 삼은 끈보다 더 길면 ‘길다’, 동일하면 ‘같다’, 더 짧으면 ‘짧다’라고 진술하면 되었습니다. 한 명씩 방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모두 아주 쉽게 올바른 끈의 길이를 진술했습니다. 

두 번째 실험에서 피험자가 다른 일곱 사람과 함께 방 안에 들어갔습니다. 일곱 명은 모두 피험자를 속이기 위한 연기자들이었고, 그들은 미리 약속한 대로 분명히 기준 선보다 더 긴 선에 대해 ‘짧다’며 틀린 답을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대답을 들으며 당황스러워하던 피험자들은 자신이 대답할 차례가 되었을 때 어떻게 말했을까요? 

자신의 결정을 내세우지 않고, 집단의 결정을 받아들여서 틀린 답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숫자가 자그마치 30%에 달했습니다. 

이를 동조심리라고 합니다. 남들이 하니까 자신이 맞다고 생각했던 것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답입니까? 아닙니다. 분명히 거짓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 안에서 꽤 많이 등장합니다. 죄를 생각해보십시오. 잘못임을 알면서도 남들이 하니까 자신도 ‘남들도 다 하는데 뭐...’라면서 따라하지 않습니까?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다른 이들의 열심 하지 못한 신앙생활을 보면서, ‘내가 뭐 특별하다고 나도 어쩔 수 없어. 그냥 사는 거지.’라면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스스로 막습니다. 

잘못된 것, 주님으로 멀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동조심리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즉, 스스로 주님의 뜻을 그리고 진리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라오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찾느냐?” 그런데 이에 따른 그들의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지만 이에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아라.”라는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어디에 묵고 계신지를 물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장소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신 것이 아니라, “와서 보아라.”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가 직접 따라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당신이 직접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직접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들을 따라하는 행동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보다는 주님만을 따라할 수 있도록 주님께 스스로 나아가고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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