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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1-01 조회수 : 377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복음 : 루카 2,16-21 
 
< 어머니의 자격 > 

더운 여름에 세계 곳곳에서 아이를 차에 방치해 두어 아이가 사망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합니다.
이에 우리나라 한 초등학생 아이가 그런 아이들이 불쌍해 한 앱을 개발하였습니다.  
 
아이가 차에 그대로 있는 채 차 밖으로 나가면 핸드폰에 알람이 울리게 하여 아이가 차 안에 있음을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인 것입니다.  
 
그 아이가 이 일로 발명왕 상을 받은 후 정말로 이런 기능을 갖춘 차량들이 출시되었습니다.
물론 이 아이가 아니더라도 그런 장치가 장착된 차량들이 나올 수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자신과 같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런 장치들을 개발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 아이의 머리가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아이는 아이지만 엄마의 마음을 벌써부터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아이를 차에 방치해 두지만 어떤 아이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계를 발명합니다. 
누가 더 어머니의 자격이 있을까요? 
 
어머니의 자격 중 가장 중요한 자격은 모성애입니다. 
남성은 밖에서 일을 하고 밖에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어머니만큼 자녀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 시도 자녀에게 눈을 떼지 않아야하도록 모성애를 지니고 있습니다.  
 
모성애가 있어야하는 이유는 아이가 어머니의 관심이 없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주 약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한 시도 신경을 떼지 말도록 만드는 모성애가 어머니의 가장 큰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새해 첫 날 성모 마리아 축일로 지내는 것만큼 적당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 아드님의 어머니가 되신 이유는 그 자격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자격은 자녀의 존재를 잊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세상 누구도 갖지 못했던 이 모성애를 성모 마리아만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매우 강력한 모습으로 거하시지 않고 그저 마구간의 힘없는 아기처럼 거하십니다. 
그러니 내가 신경써주지 않으면 예수님은 내 안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고 그렇게 시간이 너무 흐른다면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성체를 영해도 모든 사람이 구원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신경써주지 않으면 돌아가실 수도 있는 매우 약한 모습으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잘 지켜낼 수 있을 때 그분이 지닌 영원한 생명도 내 안에서 지켜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체를 영하더라도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 자주 잊어버립니다.
이것이 성모 마리아와 다른 점입니다. 
한 순간도 그분의 현존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때 성모님처럼 누군가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덕분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분을 모실 자격을 갖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우리 노력 때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목동들이 아기 예수님을 보고 기뻐합니다. 
그 이유는 아기 예수님이 강력해서가 아닙니다.
구세주께서 살아‘계심’을 보고 기뻐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과 그 태중의 아기가 기뻐 뛰놀았습니다. 
자신들에게 큰 보화를 줄 분이 오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구원자께서 한 인간 안에 잉태되어 ‘계심’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그리스도의 ‘현존’을 지켜줄 수 있는 모성애가 있어야 주위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분의 현존을 잊고 내가 아무리 누군가에게 잘해줘 봐야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주님의 현존을 잊지 않기 위해 손에 묵주를 쥐고 다녔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축구를 할 때도 심지어 술집에 가도 묵주를 쥐고 있었습니다. 
묵주 때문에 조금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주님의 현존을 기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제가 된 이후로는 교만해져서 그런지 그냥 그분의 현존을 느끼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것들에 너무 정신이 팔려 주님의 현존을 잊고 사는 시간이 매우 많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다시 손에 자그마한 묵주를 쥐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에 맞춰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그 시간을 통해 주님의 현존을 규칙적으로 되새길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현존을 위해 우리처럼 약한 사람들은 손에 그분의 현존을 알려주는 어플 하나 정도는 지니고 다닐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핸드폰이 있나 없나를 신경 쓰는 반 정도만 그분의 현존을 기억해 낼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이렇게 한 해를 시작한다면 우리 성탄 때 만났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함께 살아가시며 나와 이웃들에게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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