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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27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2-27 조회수 : 287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스스로의 자존감이 떨어지게 되면 지금의 삶에서 충실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존감의 시작은 어디에서 시작할까요? 바로 비교하지 않는데서 높은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는 힘이 마련됩니다.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내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정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틀린 사람이 없고 단지 나와 다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비교하는 우리들입니다. 아내, 남편, 부모, 자녀, 그리고 나의 이웃들과도 얼마나 많은 비교를 하고 있습니까?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남과 비교합니다. 비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다음의 2행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비: 비참해지거나.

교: 교만해지거나. 

맞습니다. 비교를 통해서 얻는 것은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는 것뿐입니다.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이 못하다고 판단되면 비참해지겠지요. 또 내가 더 낫다고 판단되면 교만해질 것입니다. 사실 비교의 대상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과거의 나만의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나와 지금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서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겸손을 자주 말씀하셨고 당신 삶을 통해서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겸손의 삶을 많은 성인 성녀들이 따랐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은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로 알려져 있지요. 그가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를 오늘 복음에서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무덤을 달려갑니다. 그런데 요한이 먼저 무덤에 다다르지요. 하지만 무덤 안에는 먼저 들어가지 않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장면을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욕심도 들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 그보다는 예수님의 선택을 받아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입니다. 

베드로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선택만을 바라보면서 겸손의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뜻이었고, 이를 철저히 따랐기에 사랑의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비교는 결코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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