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켄터키 대학 병원의 데이비드 스노던 박사는 ‘감사의 건강의 상관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했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 내의 일곱 군데 수녀원에 있는 수녀님들을 대상으로 수십 년 동안 생활 습관을 관찰했습니다.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과 긍정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는 수녀님들과 불평이 많고 부정적이었던 수녀님들을 비교했지요. 그 결과, 감사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는 수녀님들의 수명이 평균 7년 정도 더 길었을 뿐 아니라 뇌세포의 파괴 정도도 덜한 것이었습니다.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과 긍정적인 삶의 자세가 그 어떤 야망이나 부유함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내 욕심을 먼저 채우는 것이 중요했고, 누구보다는 여유 있는 생활을 해야지만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족(滿足)’이라는 한자어가 있습니다. 찰 만(滿)자와 발 족(足)자를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만족이라는 말의 뜻은 ‘발이 차있다’라고 해야만 할 것 같지만, 실제로 우리는 ‘마음에 흡족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발이 차있는 상태’가 바로 마음에 흡족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이 발까지만 적시면 충분하다는 것으로, 돈이든 명예든 발까지만 차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 위까지 적시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이 욕심 때문에 우리는 만족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가 없고 긍정적인 마음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 발까지만 차 있는 상태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소소한 것들에 감사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삶으로 나아갈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 대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바로 사람의 아들을 준비했던 예언자임을 밝혀주시지요. 그는 참으로 쉽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그를 따랐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을 떠올려볼 때, 조금만 욕심을 부렸다면 또한 권력에 조금만 타협했다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의 기준을 따르지 않습니다. 주님의 준비하는 삶, 주님의 뜻에 맞게 사는 삶이야말로 그에게 만족의 삶이었고 감사할 수 있는 삶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세운 만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멋대로 다루고, 자신들을 구원할 사람의 아들이신 주님까지도 고난을 받게끔 합니다.
지금 우리의 만족은 어디까지입니까? 혹시 발까지가 아니라 머리끝까지 차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물이 발까지 차면 만족할 수 있지만, 머리끝까지 차게 되면 숨을 쉴 수 없게 되어 결국 죽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감사와 긍정적인 마음이 우리를 진정으로 살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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