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팀과 개신교 팀 사이에 축구 시합이 벌여졌습니다. 사람들이 모였고,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도 민간인 복장을 하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전반 10분 경, 가톨릭 팀이 먼저 골을 넣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환호를 했고, 그 자리에 계시던 예수님도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이렇게 전반이 1:0으로 마무리 된 뒤, 후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개신교 팀도 한 골을 넣은 것입니다. 개신교 신자들은 기뻐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수님도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좋아하셨습니다.
그때 한 노신사가 예수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당신은 도대체 어느 편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는 어느 편도 아니고 그냥 축구 보러 왔습니다.”라고 답하셨지요. 그러자 노신사는 혀를 끌끌 차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당신은 무신론자시구먼!”
예수님께서는 누구 편이실까요?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우리’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끊임없이 내 편 네 편으로 가르고 있습니다. 일치가 아니라 분열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과연 그 모습을 주님께서는 좋아하실까요?
자신에게 맞다 싶으면 응원과 지지를 보내지만, 자신과 다르다 싶으면 비판과 단죄를 멈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직접 보여주셨던 사랑은 내가 응원하는 사람에 대한 것만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반대하는 사람까지도 받아주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철저히 이기적이고 세상의 욕심이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꼭 집어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세례자 요한에게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다면 마귀 들렸다고 말하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세례자 요한의 요구를 닮을 자신이 없었고, 죄인들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모습을 따를 자신이 없었던 그들이었지요. 도저히 따를 수 없다면 반대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나 봅니다. 그리고 반대하겠다고 생각한 이상 그 어떤 모습도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마귀 들린 사람이 되었고, 예수님은 먹보요 술꾼이며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자기 자신이 기준의 잣대가 되어서 남들에 대한 끊임없는 판단과 단죄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이 모습이 바로 지금 예수님까지도 판단하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주님이 바로 내 기준의 잣대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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