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대림 제1주간 수요일]
복음 : 마태오 15,29-37
< 자괴감의 배고픔, 자긍심의 배부름 >
이기헌 주교님의 ‘함께 울어주는 이’란 책에 당신이 군종신부 하실 때 겪으셨던 정체성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주교님이 강원도 양구에서 군종신부 하던 시절 사제로서의 정체성 문제로 무척 힘들어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들 때 아직 성당도 갖추어있지 못한 부대에 부임하여 그 외로움을 달랠 방법이 없었습니다.
처음엔 시간이 많이 남아 책도 실컷 읽고 음악도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외로움만 더 커갔습니다.
결국 당신을 달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술이었습니다.
밤마다 나가서 술을 먹지 않고서는 잠자리에 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복귀할 때는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인가?’라는 자괴감에 더욱 괴로우셨다고 합니다.
그날도 포장마차에 들렀다가 사제관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사제관은 부대 밖에 있는 일반 신자들을 위한 양구 본당 위쪽에 있었기에 성당을 지나쳐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성당에서 비치는 성체 등 불빛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신부님은 자신도 모르게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 성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괜한 서러움이 몰려와 “예수님, 정말 힘듭니다.”하며 밤늦게까지 성체 앞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차츰차츰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언제라도 힘들 때는 나에게 오너라.”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의정부교구 교구장으로 계시는 주교님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날 이후 저는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와도 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성체 앞에서의 체험이 확신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사제생활을 하며 어렵고 힘들 때 조용히 성체 앞에 마주 앉으면, 그 어떤 힘든 일도 고독도 사그라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기헌 주교님은 외로움을 세상 것에서가 아니라 성체 앞에서 채울 수 있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그래서 성체 앞에 머무는 즐거움을 알게 해 준 그 외로움에 대해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 외로움을 세상 것으로만 채우려했다면 어땠을까요?
계속 자괴감이 커져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가야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배고픈데 물만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 순간은 배가 부른 것 같지만 더욱 큰 허기를 느끼게 되고 또 물을 마시지만 더 배가 고파집니다.
배고픈데 물만 마시는 자신이 한없이 바보처럼 보여 아예 물속으로 뛰어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외로움을 이기헌 주교님처럼 참 양식을 만나는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물을 마시는 것처럼 그 시간을 성체 앞에 앉아있는 것입니다.
그것만 하면 육체적으로 목은 좀 마를지라도 배가 차서 기분이 좋아지게 됩니다.
성체 앞에 앉은 이들은 모두 배고픈 이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함께 사흘 동안이나 머물렀던 사람들은 빵과 물고기를 배부르게 배급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엾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머무는 이들을 가엾게 보십니다.
그래서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시고 그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일곱은 성령의 숫자이고 안식일의 숫자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말하고 성령으로 느끼는 배부름을 말합니다.
물고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우리 안에 모시게 됩니다.
그리고 일곱 바구니 안에 담긴 새로운 빵이 됩니다.
그들은 또 누군가를 그렇게 배불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배고픈데 누구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 가운데 이제 자괴감이 아니라 자긍심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행복의 바탕이 됩니다.
어떤 행위들은 끊임없이 자괴감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어떤 행위는 자긍심을 줍니다.
어떤 것을 먹으면 배고프고 어떤 것을 먹으면 배부릅니다.
주님과 머물며 그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만이
배부르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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