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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2-01 조회수 : 484

12월 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복음 : 루카 21,34-36

< 성모님을 모르면 예수님도 모른다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치하에서 유태인 5백만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많은 사람들이 가스실에서 죽었습니다.  
 
어린 아들을 둔 한 부부도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숙소로 나뉘어있었고 철망으로 가로막혀 있었으며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몸이 허약하였습니다. 
수용소에 들어가서는 노동이 가능한지의 여부가 먼저 처형하느냐 마느냐의 기준이었습니다.
아이는 일도 하지 못하니 먹을 것도 제대로 배급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강제노역이 끝나고 받은 적은 양의 빵의 반을 쪼개어 매일 철조망 사이로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아내는 그것을 아이에게 먹여 최대한 체력을 유지시키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결국 가스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떨고 있는 아이를 안고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울지 마라, 이 어미가 같이 간다.”
     
아이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안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죽더라도 아이를 더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스실로 함께 가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아들을 사랑했는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매일 아들에게 준 빵이 아버지가 매일 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조금 더 자신 있는 발걸음으로 가스실로 향했습니다.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러하시듯, 저희 아버지도 “내가 너희를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고생하시면서도 항상 자녀에게 미안함을 느끼십니다.  
 
저도 커서 아버지의 직장에서 그 일을 해보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얼마나 고생하셨는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아침마다 작업복을 입으시고 일하러 나가시는 모습만을 보며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머니가 아버지의 노고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을 듣지 못했다면 훨씬 더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항상 고생하시는 아버지께 순종해야 하고 가장은 아버지라는 교육을 시키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만큼 고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노고를 직접적으로 알기 전까지는 아버지를 사랑하게 만드셨던 분은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려면 누구에게서 배워야할까요? 
그분으로부터 은총을 받아 전해주는 분이 아닐까요?  
 
오늘 카나의 혼인잔치는 바로 성모님의 위치가 그리스도께로 가기 위한 어머니의 위치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포도주가 성모 마리아를 통해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면 성모 마리아는 그 포도주를 만들어주시는 분과 그것을 받는 분과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가 벌어온 돈이 어머니를 통해 자녀에게 향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머니가 교육시켜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어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모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만이 아드님이 만들어주시는 포도주가 미래의 당신 아드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피임을 알고 계십니다.

물론 성경이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포도주의 맛을 본 과방장은 신랑에게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라고 말합니다.  
 
한 단계만 건너뛰어도 은총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과방장은 성모 마리아를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도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믿음이 없었다면 포도주의 기적이 일어날 수 없었듯,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성체성혈 기적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 예식을 행하라고 했더라도 그 예식을 통해 정말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할 것이라는 믿음을 인간 스스로는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개신교는 성찬례는 그대로 하지만 그것이 진정 예수님의 살과 피인 것은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성체성사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끊어진 다리 위로 강을 건널 수 없듯, 성모 마리아를 버리면 예수 그리스도께로 갈 수 없습니다. 
과방장이 성모 마리아를 믿어야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 도달할 수 있듯, 성모 마리아께 다가가지 않으면 그리스도께 대한 비밀을 배울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모님을 통해 은총을 내려주시기에 우리는 성모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워야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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