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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1-13 조회수 : 418

11월 13일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독서 : 티토 2,1-8.11-14
복음 : 루카 17,7-10

< 내가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하시는 분 >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소금 인형은 많은 곳을 여행했습니다. 
소금 광산을 지나 소금 사막을 넘어 소금 염전에 다다랐습니다. 
염전 앞에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광활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소금인형은 멈칫하며 바다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니?”
바다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들어와서 보렴.” 
 
그래서 소금인형은 바다 속으로 첨벙첨벙 들어갔습니다. 
들어갈수록 자신이 녹아내리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죽음이었습니다. 
그래도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점이 녹기 전에 소금인형은 경탄하며 외쳤습니다.
“아. 아제야 내가 누군지 알겠군!”

소금인형은 바다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 바다가 아니면 소금인형이 누구인지 알려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소금인형은 바다와 가까워질수록 아무 것도 아니게 됩니다. 
바다가 아니었으면 자신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금인형이 녹는 것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자신의 원천이 자신을 죽인다는 사실은 인정하기 싫어집니다. 
하지만 자신을 죽이는 이가 참 자신의 창조자입니다. 
참 사랑은 상대를 죽여 상대가 누구인지 알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만들어 당신이 전부가 되시는 분이 참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종’에 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믿음’을 더해달라는 제자들에게 그 대답으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돌무화과나무가 바다에 심겨질 것이라고 하시며 이어서 이 말씀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바다에 돌무화과나무가 심겨진다는 비유 말씀은 쓴 물에 법(토라)이라는 이름의 나무를 넣었던 마라에서의 기적을 연상케 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마실 물이 없었는데, 발견하게 되었던 우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계명을 선포하시며 어떤 나무를 그 물에 넣으면 그 물이 달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니 그 물이 달아졌습니다.  
 
이렇듯 믿음이 하느님의 법인 사랑을 그 사람 안에 넣어 그 사랑이 실천되게 하면 그 사람의 쓴 본성을 달게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순종을 전제합니다. 
믿음으로 우리 안에 넣는 돌무화과나무가 바로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계명은 지켜져야 의미가 있습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주님 앞에서 ‘순종하는 종’이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성모 마리아처럼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곧 믿음인 것입니다. 
이 말씀만 하셨지만 성모 마리아는 엘리사벳으로부터 “행복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이란 말을 듣습니다.  
 
그분 앞에서 종이 되는 것, 그분 앞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아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소금인형은 바다 속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다와 하나 되었습니다. 
자신이 바다에 녹은 것 같지만 사실 바다를 자신이 품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될 때 하느님은 자신 안에서 전부가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곧 하느님임을 알게 됩니다.  
 
이는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완전히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기 전에는 경험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이런 경지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종이 밖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주인의 식사를 도운 다음에 그래도 이렇게 말해야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는 불후의 명작인 ‘최후의 만찬’을 제작하면서 예수의 모델로 ‘피에트로 반디네리’라는 한 성가대원을 발견해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로마로 음악을 전공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가리옷 유다의 얼굴을 찾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눈에 띈 것은 역시 피에트로 반디네리였습니다. 
그의 얼굴이 유다처럼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작은 동네의 성가대원이었을 때의 얼굴은 예수였고, 로마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돌아온 피에트로의 얼굴은 유다였던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공부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하는 것뿐입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전부이신 하느님뿐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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