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제1독서 : 에제키엘 47,1-2.8-9.12
제2독서 : 코린토 1서 3,9ㄴ-11.16-17
복 음 : 요한2,13-22
< 자아실현이 아닌 자아제사가 드려져야 할 성전 >
영화 ‘공작’(2018)은 대북공작원인 실제인물 ‘박채서’를 그린 영화입니다.
영화의 핵심 내용은 박채서 씨가 흑금성이라는 안기부 비밀공작원으로 활동할 당시 김대중 대통령 선거에 있을 뻔한 북풍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안기부에서는 그동안 선거가 있을 때마다 여당의 승리를 위해 간첩침투와 비무장지대 폭격 등의 조건으로 북에 돈을 지불해왔습니다.
남북관계가 긴장관계 모드가 되어야 보수여당의 지지율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보수여당을 지지해 준 자신들도 안위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박채서 씨가 야당의 김대중 씨가 빨갱이라고 하면서 그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북에 도움을 요청하는 안기부와 집권여당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충성을 바치던 박채서 씨는 ‘북한이 무력도발 등으로 김대중 씨의 당선을 반대 한다면 오히려 김대중 씨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적합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정일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특권을 이용해 김정일을 설득하여 폭격을 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합니다.
김정일은 그의 말을 듣고 폭격을 해 주려는 마음을 접습니다.
이에 김대중 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는 내용입니다.
어쩌면 고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셈입니다.
흑금성 박채서 씨는 그 덕분으로 이중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게 됩니다.
안기부라면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안기부가 자신들의 개인적 안위를 위해 정권이 교체되는 것을 원치 않아 오히려 자신들이 맞서 싸워야하는 북쪽의 도움을 요청했다는 내용은, 물론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참으로 무엇이 조직을 오염시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조직은 그 조직의 정신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많다면 오염된 것입니다.
어느 단체건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 단체는 본래의 정신을 잃습니다.
가족이 개인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서로를 이용한다면 그 가족이 오래 유지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오염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정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이유가 이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성전은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여 자신 안에서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기도의 장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성전에서 오히려 자아실현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권력과 돈, 명예와 쾌락 등을 추구하는 장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실현되는 장소이지 내 뜻이 실현되는 장소여서는 안 됩니다.
성전이 이렇게 오염되어 버렸다면 성전의 주인은 어때야할까요?
당연히 그 성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화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채찍을 만들어 장사하는 사람들과 환전꾼들의 책상을 뒤엎고 그들을 성전에서 몰아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각자도 작은 성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사시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의 안위를 위하는 마음이 정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은 또 장사꾼들의 소굴에서 견디셔야합니다.
레위기에는 성전에서 어떤 제사가 봉헌되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제사는 총 다섯 가지, 번제-곡식제-친교제 속죄제-보상제로 이루어집니다.
이는 지금 우리 자신의 성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살라 바치는 봉헌의 제사이고, 곡식제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드리며 참 주인은 주님뿐이라는 신앙 고백이며, 그리고 친교제는 친교는 나눔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재현하는 제사이고, 속죄제는 자신의 죄를 위해 죄를 지은 장본인인 자기 자신을 바치고 더 나아가 그 보상으로 보상제까지 거행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제사가 성막을 지은 다음 당신 성막 안에서 드려지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을 제사지내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 안에서 자아실현의 형태로 살아나려 한다면 우리 자신이 성전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제사가 봉헌되지 않는 제단은 의미를 잃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제단이 있고 그 제단에 자기 자신이 봉헌되어야 주님께서 머무십니다.
봉헌이 곧 순종입니다.
돌로 된 성전만 봉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주님께 봉헌되는 참된 성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주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을 이루려는 마음을 성령의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몰아내는 작업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