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복음 : 루카 12,49-53
< 열린 마음을 위해 >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서 포도밭 소작인들은 주인이 맡겨놓은 포도밭을 자신들의 것인 양 여겨 그것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아들까지도 죽이게 됩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들을 죽입니다.
자신들이 가진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으면 그렇게 망하게 됩니다.
주인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어떤 청년들은 애인을 사귀면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고 애인만 만나기 위해 사라져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좋은 결말을 내지 못합니다.
우린 결코 우리가 가진 것으로는 충분히 행복할 수 없게 창조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웃이 필요하고 하느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지배를 받고 수많은 약탈과 피해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싸움에 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싸움을 해 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해봐야 살육 수준으로 우리가 당했을 것이 뻔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힘이 없었을까요?
물론 너무나 단순하고 무식한 판단일 수 있겠으나, 제 생각으론 당시 일본은 겸손하였고, 조선은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교만함이란 내 안에 좋은 것이 충분히 많다는 믿음이고, 겸손함이란 관계를 통해 타인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지혜입니다.
자신 안에 좋은 것이 있다고 믿을 때 절대 문을 열지 않습니다.
겸손함은 누군가의 필요함을 알기 위해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지혜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만 쇄국정책을 펴왔던 것이 아닙니다.
일본도 1800년대 중반까지는 쇄국정책으로 일관해왔습니다.
그러나 미국 함대의 힘의 위력을 보자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반면 비슷한 연도에 우리나라에도 프랑스 함대가 와서 힘을 과시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우리의 좋은 면을 지켜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유교경전에 더 집중하였습니다.
수많은 학교에서 사서삼경을 읽는 소리만 넘쳐났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믿었습니다.
반면 일본은 그때 받아들인 기술로 100년 뒤에 자신들에게 힘을 과시하던 미국을 선제공격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때 일본이 가지고 있던 항공모함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것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여전히 호미와 곡괭이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도 나라와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세상과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더 발전시켜 나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마냥 제자리입니다.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으나 무언가 발전은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 원인이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이 너무 소중하다고 믿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새로 받아들이기 위해 버리고 태워야 할 것을 너무 아까워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 안에 자신의 한정된 땅이 있습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심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은 뽑아버려야 합니다.
유교에 분명 좋은 것도 있겠으나 지식인들의 머리를 유교사상으로만 가득 채워서는 안 되었습니다.
우리의 겸손하고 열린 자세만이 결국 우리 자신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합니다.
태우러 오신 것입니다.
없애러 오신 것입니다.
무언가 심기 위해서는 이전에 있던 것들은 태워야합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한 집안에서도, 한 나라에서도, 나라끼리도 싸웁니다.
예수님은 이런 싸움을 일으키러 오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아니셨으면 이런 싸움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어둠이기에 싸움이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빛이 들어올 때 어둠과의 싸움이 일어납니다.
우리 안에도 그리스도의 피가 떨어지면 그리스도의 뜻과 내 뜻이 서로 싸우게 됩니다.
이런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불이 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싸움을 일으키기 위해 당신 피를 흘리셨고, 당신 피가 성령의 불이 되어 우리를 불사릅니다.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을 따름이 자신의 뜻대로 살던 것보다 행복한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쇄국정책을 쓰는 것보다 문물을 교환하고 지식을 교환하여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취해야 할 것은 취하는 것이 더 행복한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결코 둘을 이길 수 없음을 아는 겸손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신 안에 갇혀있어 봐야 좋을 게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결코 자신 안에 좋은 게 없음을 인정합시다.
그러면 나를 만나주는 주위 사람들이 더 고마워지고 그러면 나는 더 건강하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것을 태울 준비가 된 사람에게 성령의 불을 붙이러 오십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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