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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2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0-22 조회수 : 449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복음 : 루카 12,13-21

< 주님을 자아의 욕구 충족수단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
 
류시화 작가의 ‘인생 우화’에 ‘단추 하나’란 제목으로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물장수 페이사흐는 아내 파이가와 함께 다섯 자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아내 파이가는 본래 그 마을의 가장 큰 부잣집의 외동딸이었고 페이사흐는 고아출신이었습니다.  
 
신붓감으로 그녀보다 나은 사람이 없었지만 파이가는 굳이 페이사흐와 결혼하겠다고 하여 
자신의 집에서 쫓겨난 상태입니다. 
이 집은 매우 가난하여 닭 몇 마리 빼고는 가진 것이 없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 마을에서 가장 웃음소리가 많이 나는 집이 이 물장수의 집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닭 한 마리를 팔아 동전 한 닢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온 가족이 옆 마을로 아버지 페이사흐의 겉옷 단추 하나를 사러 갔습니다. 
마침 겉옷에 알맞은 단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장점 주인은 그 단추만 새것이면 다른 단추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다른 단추들도 갈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단추들도 갈려고 보니 낡은 옷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겉옷을 아예 새것으로 사야만 했습니다.  
 
윗도리만 새 거면 안 어울리니 바지도 사야했습니다. 
아빠만 새 옷을 입으면 안 되니 아내와 자녀들 것까지 새 옷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페이사흐가 가진 것은 동전 한 닢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단추 하나만 사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온 가족은 머리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페이사흐는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했고, 아내 파이가는 이런 집에 시집오는 것이 아니었다고 후회하였으며, 아이들은 ‘왜 우리 부모님은 남들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슬퍼졌습니다.
     
집에 돌아온 페이사흐는 그 새 단추를 울타리 밖으로 집어던졌습니다. 
그리고 가족은 이내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바라는 것이 많아지면 슬픔도 많아집니다.

어떤 사람이 남에게 돈을 떼였거나 땅이나 집이 팔리지 않아 어려워할 때 기도를 청하면 저는 기도해 드리겠다고 합니다. 
돈이 있어야 자녀도 교육시키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 청을 예수님께 드리면 예수님은 그런 청을 들어주실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혼이 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형이 자신의 유산까지 모두 가로챘다고 주님께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본성이 사람이란 뜻입니다. 
본성이 사람이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본성은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알 수 있는데 여전히 돈을 좋아하면 본성이 아직 사람인 것입니다.  
 
만약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다면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을 것입니다. 
돈에 대한 욕구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돈에 대한 욕구가 없으셨습니다. 
애벌레가 나뭇잎을 좋아하고 나비가 꽃을 좋아하듯 내가 좋아하는 것이 땅의 것이면 나는 아직 하늘이 아니라 땅에 속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일본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어 아내를 잃고 자신은 그 후유증으로 죽어가던 나가이 다카시라는 사람이 두 자녀를 위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물려주어 자신이 죽어도 이들만은 잘 살 수 있도록 했을까요?
물론 그런 걱정을 안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의 책 ‘사랑하는 아이들을 남겨두고’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일생 동안 언제나 신의 뜻에 따라 신의 나라와 그 옳은 길을 구한다면, 신은 반드시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줄 것이며 영원의 행복으로 인도해 줄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 
 
자녀들에게 돈보다는 신앙을 남겨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본래 의사였던 나가이 다카시는 위가 안 좋은 사람에게 약을 지어줄 때 쓴 약을 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단 사탕을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서는 쓴 약을 주어야 하는 것처럼 하느님도 필요하니 고통을 주실 것이라 믿고 가난도 그 주님께서 주시는 약이라 믿으며 자녀들에게 그 쓴 약을 기꺼이 먹어달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인이면서도 이 세상에서 끊어야만 하는 것들을 오히려 욕망하도록 자녀를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께 나의 탐욕을 채워달라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우리 가진 것을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뿐입니다.  
 
사랑이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그것만을 청할 때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주님을 우리 욕구 충족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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