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
복음 : 루카 10,1-9
<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은 어머니가 제가 어렸을 때 하던 잔소리를 제가 똑같이 어머니에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밥 먹을 때 흘리지 말고, 입도 잘 닦고, 미리 화장실 다녀오고, 잘 보고 걸으라는 등의 무수한 잔소리를 합니다.
물론 잘 하면 엉덩이도 툭 쳐주곤 합니다.
그러면 또 은근히 좋아하시는 눈치입니다.
그러면서 관계란 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처음엔 제가 어머니 뱃속에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모든 것을 공유하였습니다.
그런 편안함을 세상이라는 두려움과 맞닥뜨리게 만든 것이 또 어머니입니다.
영원히 그 속에서 살 수는 없으니 나를 밀어내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장 완전한 보호자셨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상처도 많이 주는 분이셨습니다.
나는 커지는데 어머니는 점점 작아지셨습니다.
학교의 아이들이 어머니보다 훨씬 예뻐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머니는 배우지도 못한데다 이제 얼굴도 젊은 아이들에게는 안 됩니다.
게다가 성격은 내가 좋아하는 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머니가 여전히 나를 가장 사랑해주시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지금 남아계시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이젠 어머니가 아이가 되고 내가 어머니가 된 거 같습니다.
거의 내 몸 안에 어머니가 사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삼위일체 신비일까요?
어쨌건 관계는 깊게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관계의 깊이를 깨달아가는 것이 곧 인생이 성숙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당신의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한 집에 머물며 그 집에서 주는 모든 것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서 좋은 것일까요?
예수님은 복음을 말로써가 아니라 관계를 맺음을 통하여 전하기를 바라십니다.
어차피 복음이란 것이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전하는 이가 몸으로 친교의 관계를 보여주지 못하면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어찌 그 전하는 복음이 기쁨이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통하여 당신을 알아볼 것이라 하셨습니다.
깊은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어서 이 사람 조금 만나고 저 사람 조금 만나는 식으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전하는 복음도 얕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한 카사노바 남자가 나옵니다.
모든 여자들이 이 남자만 보면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여자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매력을 풍깁니다.
그래서 매력을 풍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남자가 그렇게 된 이유는 실연의 큰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남자는 사랑에 빠진 사람을 잃는 아픔을 다시는 당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아프게 한 여인에 대한 복수를 다른 여자들에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어쨌건 이 사람은 사랑이 깊어지려고 하면 그 여자를 정리하고 또 다른 여자를 만납니다.
그래서 이 남자의 사랑은 한 사람과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이 많은 여자를 사귀기 때문에 한 사람만 끝까지 사랑한 사람에 비해 사랑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관계는 넓이가 아니라 깊이입니다.
깊어지려면 오래 파야합니다.
그러려면 이 집 저 집, 아니 이 사람 저 사람 옮겨 다니지 말아야합니다.
이 세상은 관계를 잘 맺는 방법을 배우는 장입니다.
하늘나라에서의 관계는 영원히 지속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이 사람 만났다, 이 사람이 싫어지면 저 사람을 만나는 식의 관계만 지속한다면 그 사람은 하늘나라 들어갈 준비가 아직 안 된 사람입니다.
관계는 오래 지속할수록 깊어집니다.
그 관계가 깊어지는 이유는 내가 변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내가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깊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관계가 깊어지면 계속 변해가야 합니다.
참고 희생하는 능력이 커집니다.
성장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장 통을 겪어야만 하겠지만 그 고통이 두렵다고 성장하기를 포기하는 것은 더 어리석인 일입니다.
주님이 만나게 해 주셨다고 생각하고 지금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끝까지 가져가보도록 노력합시다.
사람만큼 탐험할 곳이 많은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의 능력이 복음 전파를 위한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친교가 곧 복음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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