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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0-17 조회수 : 434
10월 17일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복음 : 루카 11,42-46

< 힘없을 땐 바리사이, 힘 있을 땐 율법학자 >
 
가만히 생각해보면 신학생 때 저는 바리사이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려고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함께 산 사람들과의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기도하고 공부하느라 모든 시간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심지어 한 동기에게 혼자 하늘나라 갈 거냐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1년 동안 함께 공부한 수도회 신학생을 신부 되어서 봤는데 못 알아보았습니다. 
함께 1년 동안 같은 반이었는데도 친분을 쌓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그 신부가 같은 반이었다는 것을 말해서 알았습니다.  
 
저는 누가 봐도 기도 잘 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킬 건 다 지켰지만 그러면서도 힘들어하는 신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바리사이는 그런 사람입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키면서도 정작 중요한 사랑은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아마도 일반 신자들은 결혼해 자녀를 낳기 전에 바리사이로 살아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바리사이는 무언가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녀로서는 열심히 살지만 부모를 심판합니다.  
 
자기가 부모가 되면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학생이라면 선생님을 심판하는 학생이 바리사이입니다. 
직장에서는 말단 직원들이 바리사이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정말 많은 일을 하면서 시켜먹기만 하는 상사를 비판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지키지만 남을 판단하며 사랑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자신도 죄인인데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남 탓만 하니 정의롭지도 못한 것입니다.

이런 바리사이들이 막상 힘을 얻어 누군가 위에 서면 율법학자로 바뀝니다. 
제가 사제가 되고난 다음부터는 율법학자였습니다. 
율법학자는 타인에게 율법을 강요하는 위치에 선 사람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이고 직장에서는 상사입니다.
자신도 부족하면서 또 남을 가르쳐야 하는 위치에 서니 자신도 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학생 때는 사제들을 판단하며 가난하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돈도 많이 받고 선물도 많이 받으며 가난을 잊어갔습니다.  
 
주위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자들이 잘 해 주어서, 혹은 사목 상 어쩔 수 없다고 자기합리화를 했습니다.  
 
은근히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들으라고 강론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은 부족함 없이 살며 나눔과 가난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 교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바리사이, 율법학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의 상징으로 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회칠한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 사람을 시체가 들어있는 무덤으로 여기는데 본인만 모르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너나 잘 해라!”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남 신경 쓸 에너지 있으면 자신 먼저 들여다보라는 말씀입니다. 
자신 먼저 들여다보되 ‘사랑’에 집중하라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사랑이 가득차면 바리사이가 되지도 않고 율법학자가 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남을 심판하지 않고, 또 사랑은 강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이 될 때 바리사이, 율법학자에서 벗어나 참다운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내 안에 죽은 시체나, 뱀, 혹은 자아로 가득 차 있는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만으로 가득 차 있는지 항상 살펴야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만 하고 싶다면 이미 그 안에 사랑이신 하느님이 들어계신 것이고 그래서 무덤이 아닌 생명의 성전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무덤 아니면 성전입니다. 
이는 그 안에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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