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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10-07 조회수 : 450

10월7일 [연중 제27주일] 
 
복음 : 마르코 12,2-16

< 결혼의 밑그림 > 
 
테드(TED) 강연에서 트레이스 맥밀란이란 여성이 나와 결혼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자랄 때 놀이터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합니다. 
 
“트레이스와 아무개는 나무에 앉아서 키스를 하네. 제일 먼저 사랑을 하고 다음엔 결혼을 하고, 그리고는 유모차 안에 아기가 생긴다네.” 
 
그리고 그녀는 ‘사랑 – 결혼 – 아기’가 인생을 사는 방법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성장하여 그 인생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조금 달랐습니다. 
 
사랑 – 결혼 – 이혼 – 사랑 – 임신 – 결혼 – 이혼 – 또 결혼 – 또 이혼 ...
이 여성은 이제 결혼에 대한 꿈을 접고 자기 자신과 결혼한 것처럼 살아간다고 합니다.
 
결혼을 환상처럼 생각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결혼 생활을 해 보신 분들은 “니들이 살아봐야 알지.”라고 충고할 것입니다. 
상상하는 모습과 현실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차이가 있어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믿고 결혼을 합니다.
혹은 부모로부터 또는 가까운 부부로부터 안 좋은 것들만 너무 봐서 아예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집값 비싸고 애들 키우기 어렵고 서로의 성격 맞추어가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결혼을 포기합니다. 
 
어쨌든 우리 각자는 결혼에 대한 이런 저런 각자의 밑그림을 그립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자신들이 그린 밑그림에 색을 입혀갑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그린 밑그림과 현실이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매우 당혹해합니다.
나중엔 그 밑그림에 집착하여 실패한 그림은 버리고 다시 그려보려 합니다.  
 
그래서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또 자신이 그려놓은 밑그림에 색칠을 시작합니다. 
물론 자신이 상상한 결혼생활 그대로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밑그림에 집착하다보면 결코 원만한 부부생활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결혼의 그림은 어떤 것일까요? 
완성시킬 수 없는 엄청난 그림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애들 장난하는 그림을 그려나가기를 원하실까요? 그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났을 때 그린 사람도 만족하고 보는 사람도 만족하는 그런 그림일 것입니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하는 것은 밑그림을 결혼하는 사람이 그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밑그림을 자신이 그리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밑그림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상황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TED 강연을 한 트레이스 맥밀란은 처음부터 온전한 결혼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상황에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포주였고 어머니는 그 밑에서 일하던 여자였습니다.  
 
두 사람이 딸을 돌볼 수 없게 되자 트레이스는 여러 집에 맡겨지며 자라야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국 그녀가 가지게 된 결혼관이란 그저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면 그것으로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자신이 그린 밑그림에 비해 결혼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자 이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의 잘못된 밑그림 때문에 이혼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녀가 결혼했던 세 남자가 모두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그림을 잘 못 그릴 때는 전문가가 밑그림을 그려준 것에 색만 칠하면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결혼을 자신이 계획한다면 반드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떤 인간도 인생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다 고려하여 밑그림을 그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이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되어나갈 것이라 믿어서는 안 됩니다. 
결혼은 주님이 맺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왜 맺어주셨는지 생각해야합니다. 
하느님의 밑그림을 찾아야합니다.  
 
물론 인간의 눈으로 하느님의 밑그림을 한 눈에 알아볼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모르지만 색칠해가는 재미는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그림을 그려놓고 하느님의 엄청난 솜씨에 탄복하기도 합니다.

영화 ‘노트북’(2004)의 첫 장면은 연세가 많으신 한 남자가 또한 연세가 많아 치매에 걸려 병원에 있는 한 여성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둘은 사랑하는 부부였지만, 아내가 치매에 걸려서 사랑하는 남편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젊었을 때 남자는 가난했고 여자는 부자였기에 사랑했지만 헤어집니다. 
그러나 서로 잊지 못하던 두사람은 7년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나 결혼합니다.
     
남자는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린 아내가 자신을 기억 못하자,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서, 과거의 둘의 사랑 얘기를 책의 내용처럼 읽어주며 애틋한 사랑을 이어갑니다. 
결혼한 부부라면 한번쯤은 볼만한 너무나 감동적인 내용의 영화입니다.

결혼을 1년씩 짧게 10번 한 사람이 사랑에 대해 더 잘 알까요, 
아니면 10년 동안 부부생활을 한 사람이 더 잘 알까요? 
아마 10년을 살아본 사람은 1년씩밖에 살아보지 못한 사람을 보며 부부생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살아본 사람은 10년 산 사람을 바라볼 때 역시 그렇게 볼 것입니다.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어쩌면 아무 것도 모를 수 있습니다.
     
영화 ‘임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할아버지 무덤에서 떠나지 못하며 우시는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립니다.
할아버지가 젊으셨을 때 속도 많이 썩였던 것 같은데, 그 할머니의 울음의 의미를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죽음까지 가보지 않았다면 할머니는 부부생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끝까지 가봐야 하느님의 밑그림이 어떤 것이었나를 알게 됩니다.

저는 유학을 가기 전에는 ‘유학을 왜 가야하나?’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저 기도 잘하는 신부가 되고 싶었고 공부에 대한 큰 신뢰는 없었습니다. 
공부를 하고 왔다고 하여 더 훌륭한 신부로 사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학생 때 한 번 나갔다 와 보니 역시 공부는 사제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나가서 박사학위를 따고 오라니 참으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끝내고 보니 끝까지 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운 것도 배운 것이지만 무언가 끝까지 함으로써 남는 것이 있습니다. 
마치 마라톤을 끝까지 한 번이라도 뛴 사람과 계속 중도에 포기만 한 사람과는 차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내 인생의 밑그림을 내가 그리지 않은 것에 감사합니다. 
인생은 까보지 않으면 어떤 초콜릿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초콜릿 상자와 같다는 영화 대사가 생각이 납니다. 결혼도 마찬가지고 모든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만남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내가 그림을 그린다면 그 그림대로 살아야만 하기에 현기증이 날 수 있지만 주님께서 그려놓은 밑그림이 무엇인지 색칠하다보면 삶도 참 재미있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해도 크게 당황스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그린 그림을 끝까지 함께 해서 완성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모든 관계만큼의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것이고 마지막 때에 그 작품들을 들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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