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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9-27 조회수 : 471

9월27일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코헬렛 1,2-11
복음 : 루카 9,7-9

<상대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비롭습니다> 
 

영화 ‘신과 함께 2 – 인과 연’에서 주인공 하정우는 저승사자로서 두 차사를 데리고 다닙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하정우가 데리고 다니던 두 차사는 천 년 전 자신이 질투심에 불타 살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두 차사는 기억이 지워져 이 사실을 모르고 천년 동안 하정우를 위해 일을 했지만 하정우는 천 년 동안 이들을 보며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자신이 죽인 사람들과 천 년을 함께 일해야 하는 것이 벌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천 년 동안 이 사실을 숨기고 용서를 빌지도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이 시간이 지옥과 같았고 빨리 환생하여 전생의 기억을 지우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염라대왕의 계획으로 이 사실을 그를 섬기던 두 처사가 알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열등감과 질투심, 그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후회하는 하정우를 두 처사는 용서합니다.  
 
하정우가 용서를 빌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용서합니다.
그들은 하정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자비로운 이들이었던 것입니다.
오직 하정우만이 천 년 동안 그들이 용서해 줄 수 없다는 생각에 혼자 끙끙 앓고 지옥처럼 살아왔던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사람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되는 원인은 서로 간의 잘못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잘못은 쌍방과실입니다.
혼자서 잘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같이 붙어 있는 나라들은 항상 사이가 안 좋고, 함께 사는 부부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많은 경우 자신의 지례짐작으로 혼자 담을 쌓고 멀어지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어린이가 어른보다 더 자비롭다는 것을 이번 추석 때 보고 왔습니다.
저의 조카가 자신의 딸을 혼내는 것을 두 번 보았습니다.
그런데 조카의 딸이 혼날 때는 눈물을 흘리며 울고불고 하다가도 어느새 엄마에게 달려와 용서와 화해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못 이기는 척 안아주면서도 아직 화해에 어색해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감정정리가 아이보다 느린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잘못한 것을 엄마보다 더 먼저 잊어버립니다.
아이들은 잘못한 일은 고쳐나가면 되지만 잘못된 관계는 되돌리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죄책감과 수치심을 오래 지니지 않습니다.
관계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관계보다는 잘못에 더 민감합니다.
상대가 잘못의 용서를 청하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잘잘못을 분명히 가리고 나서야 관계를 재확립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잘잘못을 따지다가 결국 관계라는 큰 보물을 잃게 됩니다.
     
아담이 그랬습니다.
그는 하느님과의 관계보다 잘못에 더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잘못했으니까 그것을 해결해야만 하느님과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잘못하지 않는 아담이 아니라 그냥 아담을 사랑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아담은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해결하지 않으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안 된다고 믿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그것도 모자라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소식을 들은 헤로데의 반응은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합니다.  
 
자신이 요한을 죽였다면 예수님은 다른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마치 자신이 요한을 죽인 것과 상관이 있어야만 하는 인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모든 사람을 자신을 심판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헤로데가 잘못한 것을 언제든 용서하고 관계 맺으실 준비가 된 분이셨지만 헤로데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관계보다 잘잘못에 더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은 자존심과 같은 말입니다.
내가 죄책감을 넘으려면 벌거 벗겨져야하는 창피함을 감수해야합니다.
그 자존심 때문에 관계라는 큰 보물을 잃게 됩니다.  
 
저도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을 하고 사는데 그냥 상대가 자비롭다고 믿고 다가가면 저를 물리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누구나 잘못을 합니다.
옳고 그름, 잘하고 잘못하는 것보다는 관계의 가치가 훨씬 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상대는 항상 나보다 더 자비롭습니다.
그렇게 믿으면 정말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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