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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9-16 조회수 : 443
9월16일 [연중 제24주일] 
 
이사야 50,5-9ㄴ
야고보 2,14-18
복음: 마르코 8,27-35

< 신앙인이 사탄이 될 때 > 
 
영화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장군(Comrede General)과 타냐(Tanya)의 대화 장면입니다. 
장군은 타냐에게 어떻게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기 때문에 타냐는 “혁명의 와중이고 거리는 불이 나고 복잡해서 그저 도망치는 중에...”라고 말을 얼버무립니다.
그때 장군이 “헤어진 정말 이유는 무엇이지?”하고 다그치자 타냐는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았던 말을 실토합니다.
    
“사실은 아버지가 내 손을 놓아 버렸어요.” 
이때 장군은 타냐에게 말합니다.
    
“내가 사실을 가르쳐 주마. 코마로프는 네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너의 아버지는 바로 닥터 지바고야. 
만일 그가 네 친아버지였다면 아무리 거리에 불이 나고 혁명의 와중이라도 절대 네 손을 놓지 않았을 거야.” 
 
진짜 아버지는 결코 딸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는 아버지는 진짜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짜와 가짜가 구별될 수 있는 이유는 진짜 안에는 그것을 진짜로 만드는 그 진짜만의 무엇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 진짜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은 진짜 안에 들어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돼 본 사람만이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있던 그분만의 무엇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누구냐고 물어보시는 질문에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머리로 이해해서 나온 결과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자신들의 머리로 추론하여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해석하고, 엘리야라고 말하기도 하며,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나 오직 베드로만이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이 그리스도를 알아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성령을 받으신 분으로 알아본다는 말은 그 사람 안에 성령이 있다는 뜻입니다.
     
무언가를 알아보려면 알아보는 무엇이 자신 안에 먼저 들어있어야만 합니다. 
만약 꽃이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려면 아름다움이 자신 안에 먼저 들어가 있어야합니다.  
 
꿀벌이나 개는 꽃이 예쁜지 모릅니다. 
꿀벌은 그저 그렇게 생긴 모양을 보고 다가가는 것이고 개는 꽃을 짓밟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인간 안에만 아름다움이 넣어져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알아보려면 자신도 기름부음 받은 자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성령을 받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데, 이때 주님께서 오직 베드로에게만 그 성령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제대로 알아보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17)

예수님은 성령으로 당신을 그리스도로 알아보는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교회는 이렇듯 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이들이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가 곧바로 ‘사탄’이란 소리를 듣게 됩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신앙인이 되었다가 곧바로 사탄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크게 잘못한 게 없어 보입니다. 
무서운 십자가의 형벌로 나아가시는 예수님을 만류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베드로가 반박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져야만 하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벗겨 주려고 하면서 자신도 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버린 그리스도인은 사탄이 될 수 있습니다. 
아니 사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이 각자의 십자가임을 깨닫지 못하면 베드로가 들은 말을 그대로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돈이나 명예, 성공이나 세속적 즐거움을 주실 생각이 전혀 없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다가오시면서 들고 계신 것은 우리가 지고 가야할 십자가뿐입니다.

사랑받는 자 성 마카리오가 꿈을 꾸었는데, 그 꿈속에서 주님이 더없이 힘겹게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마카리오는 주님께로 달려가서 십자가를 대신 져 드리겠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걸어가실 따름이었습니다.  
 
마카리오는 또다시 주님께로 달려가 간청했습니다.
“주님, 제발 저에게 십자가를 넘기십시오.”
     
그러나 이번에도 주님은 그를 모른 체 하시며 십자가를 양어깨로 무척 힘들게 걸쳐 매고 묵묵히 걷기만 하셨습니다. 
마카리오는 가슴이 아프고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끈기 있게 주님 곁을 따라붙으며 십자가를 넘겨 달라고 다시 한 번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이윽고 주님은 여전히 십자가를 양어깨에 둘러맨 채 발걸음을 멈추더니 마카리오에게 몸을 돌리셨습니다. 
그러고는 마카리오가 당신을 처음 목격했던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다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이것은 내 십자가란다. 
네가 조금 전에 내려놓은 네 십자가는 저기 있지 않느냐? 
내 십자가를 져 주려고 하기 전에 네 십자가부터 져 나르려무나.”
     
사랑받는 자 마카리오는 뒤로 돌아 주님이 가리키신 지점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그의 십자가가 모래 바닥에 나둥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는 얼른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기다리시는 곳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와 보니 놀랍게도 주님의 어깨에 걸려 있던 십자가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주님, 주님의 십자가는 어디로 간 겁니까?”
     
마카리오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은 빙긋이 웃으며 대꾸하셨습니다.
     
“아들아, 네가 사랑으로 네 십자가를 질 때는 내 십자가를 지는 것이나 진배없단다.”

사탄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십자가를 슬그머니 내려놓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만 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사탄입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은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데 있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 없이는 사랑도, 선교도, 친교도, 성사도, 모두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점점 성당에서도 십자가가 사라지는 세태이지만 십자가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십자가 없는 신앙인은 사탄과 같다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그리고 항상 자신 등 뒤에 십자가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합니다. 
어느 새 내 십자가까지 주님이 지게 만들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인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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