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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9-10 조회수 : 400

9월10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6,6-11 
 
< 행위보다 의도에 집중하라 > 
     
사람을 죽이는 게 옳을까요, 살리는 게 옳을까요? 
아주 단순하여 아이도 대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햄릿의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말도 있듯, 어떤 때는 이런 단순한 결정을 내리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영화 ‘세븐’(1995)에서 주인공인 경찰은 자신 앞에서 손을 들고 무릎을 꿇은 사람을 죽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게 됩니다.
살인해서는 안 되는 것을 알지만 그놈이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무엇이 옳은 일인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아내의 복수를 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걸어 넘어뜨리려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단순한 질문이지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이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의 의도는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주시기만 하면 안식일 법 위반으로 고발하기 위해 앉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주 단순한 진리도 무엇이 옳은지 분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빛입니다. 거짓은 어둠입니다. 
아무리 진리가 단순해도 어둠 가운데 있다면 그 단순한 진리도 선택할 수 없는 처지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이유는 그것이 죄인 것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내가 죄의 편에 섰기 때문에 그것이 죄인지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육체에 속한 사람은 육체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영에 속한 사람은 진리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의도’에 있습니다.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은 행동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행위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죽이는 게 옳은지 살리는 게 옳은지에 대해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은 이미 육체적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진리도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진리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은 의도의 좋고 나쁨에 의해 결정이 되고 그 의도의 좋고 나쁨에 따라 진리를 아느냐 모르느냐도 결정이 됩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친구 한 명과 함께 시험지를 채점하라고 맡기셨습니다. 
나의 시험지도 있었는데 그때 기억으로는 88점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억울하게 틀린 문제들이 있어서 저는 친구 시험지도 몇 개 맞게 하고 그만큼 나의 시험지도 맞게 만들어서 96점으로 했습니다.  
 
물론 선생님은 시험지를 고친 것을 아셨고 저는 종아리를 맞아야만 했습니다.
이 상황은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타협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친구의 점수를 서로 올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누구도 친구의 점수를 서로 높여주는 것이 사랑의 실천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행위만 놓고 보면 친구 점수를 올려주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핑계를 댈 수 있겠지만, ‘의도’를 놓고 보면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그 근본 의도는 나의 점수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행위보다 의도가 앞섭니다. 
육체보다 영혼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병들었으면 육체가 건강하다하더라도 그 사람은 병든 사람으로 심판받습니다. 
반면 영혼이 건강하면 육체가 병들어도 성인으로 칭송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더 신경을 써야지 행위에 더 신경 써서는 안 됩니다. 
육체적 인간인 사람은 행위에 더 신경 쓰고, 영적인 인간은 마음에 더 신경 씁니다. 
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외적 행위가 아니라 내적 마음을 더 살펴야합니다.  
 
같이 성경을 읽어도 누구는 아는 척을 하기 위한 나쁜 의도로 읽을 수 있고 어떤 이는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고 변화하기 위한 의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결국 내 의도가 선하면 모든 것이 선해지고 밝아집니다. 
항상 행위보다 의도에 집중해야 진리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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