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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9-07 조회수 : 428

9월7일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 5-33-39

< 관계의 깊이가 행복의 척도 >
     
행복하기 위해 가장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버드 대학교에서 1938년부터 700여명을 대상으로 75년 동안 진행한 연구에서 행복은 무엇보다 ‘좋은 관계’에서 온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고독한 사람은 행복하지도 않았고 건강도 뇌기능도 일찍 저하되었습니다.
이 당연해 보이는 결론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80% 이상은 돈이 행복이라 믿습니다. 
돈이 많아지고 적어졌을 때의 행복정도를 비교했을 때 행복 치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많은데도 말입니다.  
 
부자였다가 가난해진 사람이나 가난했다가 부자가 된 사람이나 그 이전에 행복했다면 그 이후에도 행복하고, 그 이전에 불행했다면 그 이후에도 불행했습니다.  
 
부자라고 다 행복하고 가난하다고 다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면 그가 가진 작은 행복마저 빼앗길 가능성이 많습니다.  
 
대부분 어렸을 때 행복한 사람은 그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커서도 행복하고 어렸을 때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성공해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이미 관계 맺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어린이 때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많이 웃고 행복하지만 커가면서 그 행복을 잃습니다.
부모가, 혹은 사회가 행복은 관계가 아니라 성공이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관계 안에서 행복하던 아이들은 이제 자신과 관계 맺던 친구들을 경쟁자로 보기 시작합니다.
학교 등수가 행복의 척도가 되면 그 등수는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타인과 경쟁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혼자가 되어가고 그렇게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이 나에게 도움이 될 때에만 이웃으로 인정해 줍니다. 
친구를 사귀어도 근본적인 삶의 목적이 ‘소유’에 있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는 목적도 이기적이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사람을 만나도 친밀한 관계는 한 명과도 맺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현대인은 혼자 고독해하고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고독해합니다.
그래서 관계는 양보다는 깊이를 추구해야합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누구는 계속 만나야하고 누구는 만나지 말아야하는지를 구분해야합니다. 
끊고 맺을 줄 모르면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노예가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찾고 당신께 더 머물러달라는 사람들의 청을 물리치십니다.
다른 고을에도 당신 말씀을 전해야한다고 하시고 그것을 위해 세상에 오셨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사랑하지만 떠나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 때문에 모든 사람과 함께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머물렀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분의 제자들과 그분을 도와주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골고타 십자가 밑에까지 올라갔고 부활과 승천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떠날 사람과 함께 머무를 사람을 구분하셨던 것입니다. 
단순히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께 가기를 원하는 이들은 때가 되면 떠나셨고, 당신의 ‘일’을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과는 평생을 함께 하셨습니다.  
 
결국 같은 목적의 일을 함께 하는 이들은 오래 머물지만 그 목적이 다른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만나지 않게 됩니다. 
주님사랑이 목적인 공동체만이 참 친밀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지역에 큰 삼나무 숲이 있습니다. 
이 삼나무 숲의 나무들은 지상에 있는 나무들 중에서는 가장 크다는 소리를 듣는 나무들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나무는 뿌리도 깊이 내렸겠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 나무의 뿌리는 나무의 덩치에 비해 그다지 깊지 않습니다.  
 
다만 그 나무들은 서로 뿌리가 엉킨 채로 살고 있습니다. 
서로 뿌리가 엉켜있기 때문에 깊지 않아도 풍수의 피해를 크게 입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있는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리기 위해 에너지를 많이 쏟기 때문에 위로는 잘 자라지 못합니다. 
하지만 위로 자라는 것을 원하는 나무들이 모여 뿌리를 섞으면 깊은 뿌리를 내리는 에너지를 위로 치솟는데 쓸 수 있게 됩니다. 
아마도 이것이 친밀한 인간관계의 모델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일을 하시지 않으셨다면 제자들과 친밀해질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친밀한 관계는 관계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로 오르려는 같은 목적으로 모였기에 큰 노력 없이도 서로 목숨을 내어줄 수 있는 친밀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 추구하는 행복이 곧 하느님의 뜻이어야 혼자 뿌리를 내리는 고통스런 삶을 살지 않고도 참으로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합시다. 
그러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전에 없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참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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