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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8-30 조회수 : 390

8월30일 [연중 제21주간 목요일]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독서: 코린토 1서1,1-9 
 
<인간관계의 목적>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인포시크 등 4개의 IT업체를 성공시킨 성공한 벤처기업가인 스티븐 케이시는 “내가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며 나는 MIT 공대에서 최고의 공학기술을 배웠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IT사업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뛰어난 기술이 아니라 좋은 인간관계라며 “요즘 나에게 공학기술과 인간관계 기술 가운데 한 가지만을 택하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인간관계 기술을 선택할 것이다”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카네기 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재정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 15%는 자신의 기술적 지식에 의한 것이며 85%는 인간관계 즉,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는 능력 때문에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15%의 사람들은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 예를 들면 변호사라면 아주 뛰어난 법률 지식을 갖고 있어서, 회계사라면 회계에 관한 지식이 뛰어나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85%의 사람들은 사람들과 잘 지내는 능력, 즉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받아들여서 사람들과 함께 원만하게 지내는 기술을 가졌기 때문에 인생에서 성공한 것입니다.
 
이는 카네기연구소장 최염순씨의 글입니다.
최첨단 기술을 요하는 IT업체에서조차 인간관계가 성공을 좌우한다면 다른 직장들에서야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저도 이 말에 동의는 하지만, 일면 인간관계의 목적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한 것처럼 인식될까 우려가 됩니다.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이 세상에서 성공하며 자신의 행복을 키우기 위함이라면 그런 사람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기분은 썩 좋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누구든 이용당하며 기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결혼하겠다는 친구들이 찾아와 “행복하기 위해 결혼한다”고 말하면 저는 이를 바로잡아줍니다.
그것은 참다운 인간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결혼하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원망이 늘어나고 결국엔 좋은 결말을 맺을 수 없게 됩니다.  
 
성자께서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일까요? 
그분은 인간이 없어도 삼위일체 사랑 안에서 충만히 행복하신 분이십니다. 
다만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그 행복을 나누어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관계는 내가 상대를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마음으로 맺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먼저 행복하여 그 행복을 전해준다는 마음으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해님, 달님 동화에 떡을 팔고 돌아오는 어머니가 호랑이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이 인간관계를 아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사람을 충분히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떡은 언젠가는 떨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떡이 무한대로 나오는 누군가를 찾아야만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행복의 떡의 원천은 하느님이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관계의 목적은 그리스도와의 친교여야 합니다.  
 
호랑이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면 그리스도는 그 사람을 통해 무한한 떡을 제공하여 그 둘의 관계가 소진되지 않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라고 말하며 우리가 예수님과의 친교를 목적으로 불림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모든 친교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친교가 빠진다면 조만간 누군가는 잡아먹혀 관계가 깨어지는 아픔을 겪게 될 것입니다. 
친교는 유일하게 하나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친교가 목적이 되어야 나머지 관계도 오래 갑니다. 
그 친교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밖에는 없습니다.  
 
친교가 이루어진다는 증거는 시간이 갈수록 그리스도와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깊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친교가 깊은 사람이 이웃과의 관계의 친밀함도 깊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모든 관계가 참다운 친교가 되기 위해서는 그 관계는 무조건 그리스도와의 친교로 향해야만 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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