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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8-20 조회수 : 359

8월20일 [연중 제20주간 월요일]

복음:마태오 19,36-22
독서: 에제키엘  24,15-24 
 
<사람을 안다는 것은> 
 
저는 어떤 누구에게도 “난 널 알아.”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저를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저에게 “난 당신을 압니다.
당신은 이러저러하잖아요.”라고 하면 
여러 감정이 듭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다 맞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안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미 새빌은 영국의 가장 유명했던 국민 MC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죽자 나라 전체가 애도의 분위기에 휩싸일 정도로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그런데 그의 재치와 환한 웃음, 병원 등에서 평생 해 온 자선과 봉사활동 이면에는 국민들이 모르는 또 다른 지미 새빌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50여 년 동안 그의 명성을 등에 업고 무려 450여명을 성추행 하였고 성폭력 피해자 중 70%가 미성년자였습니다. 
피해자 중 아무도 그의 명성을 넘어뜨릴만한 인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평생 영국인들의 우상으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BBC 방송국은 프로그램의 이미지 때문에 사내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성폭행을 쉬쉬하였고, 병원은 암투병 어린이와 장애 아동까지 성폭행 하는 것을 알았음에도 후원이 끊길까봐 이 사실을 알리지 못한 원인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수십 년 동안 TV에 방영되는 그의 모습으로는 절대 그의 본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당연히 상대를 알 때 더 친밀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겉 표면만 보고서도 상대를 안다고 단정해버립니다. 
이름을 알고 키를 알고 가족을 알고 좋아하는 음식을 안다면 그 사람을 아는 것일까요? 
이런 것쯤은 세상 어떤 누구도 인터넷만 치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순신 장군을 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겉모양만이 아니라 내면도 알아야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면은 자기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알려면 정밀한 심리검사와 상담을 통해서도 적어도 2년은 족히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을 아는 것처럼 치부해버리고 자신이 아는 한계 내에서 벗어나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누구든 내 상상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은 본인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만날 때 안다고 하지 말고 겸손한 모습으로 바라봐야합니다. 
 
서울을 알려면 서울에 얼마나 살아봐야 할까요?
저는 로마에 9년을 살았는데도 로마를 잘 모릅니다. 
사람이 서울이나 로마보다 덜 복잡할까요? 
세상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을 알아야 관계가 깊어지기에 누군가를 끊임없이 알아가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아는 가장 빠르고 완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른 것은 다 모르더라도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가’만 알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합니다.
마음은 사람의 가장 깊숙한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마음을 알면 그 사람을 거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말 없는 보석이 말 많은 남자보다 여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네!”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이런 저런 말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여자가 원하는 것은 이도 저도 아닐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부자는 하느님과의 친밀함을 자랑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께 말을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잘 아는 것처럼 “선하신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이미 예수님을 판단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어떻게 안다고?’라는 식으로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라고 대답하십니다. 
무조건 네가 틀렸다는 뜻입니다. 
어찌 사람이 하느님을 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이 계명을 다 잘 지키기 때문에 자신 있게 물은 것입니다. 
자신도 안다고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을 잘 지키면 된다고 대답하십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잘 지켜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위선을 아십니다. 그가 부자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인데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어떻게 부자가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부자로 사는 것을 원하신다고 착각하지만 하느님은 그가 가난해지는 것을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라고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그냥 우울하게 돌아갑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원하시도록 덮어씌우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는 이미 성경에 다 나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하늘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정이 부자로 세상에서 건강하고 성공해서 살기를 원하신다고 단정 지어버립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잘 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하느님은 자신이 만든 하느님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더 완전한 관계를 맺고 그 완전한 관계에서 오는 더 완전한 행복을 맛보고 싶다면 성경말씀대로 살아보면 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하느님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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