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3일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복음: 마태오 17,22-27
<기분 나쁠 준비를 하라>
이번에 아이들과 물놀이를 가서 한참 물을 뿌리며 노는데 구석에 앉아있던 고등학교 남학생들로 보이는 아이들 중 한 무리에 물이 조금 튀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 중 하나는 기분이 매우 나쁘다는 듯 저를 째려봤습니다.
물놀이 시설에서 물속에 앉아서 얼굴에 물이 조금 튀었다고 해서 그렇게 기분 나빠 할 것이면 물 밖에 앉아있던가 물놀이를 오지 말아야 할 텐데 굳이 거기 앉아서 당연히 튀는 물에 기분나빠하는 아이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래도 조심하지 못한 잘못은 제게 있어서 거의 90도로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학교 선생님처럼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심각한 자세로 돌아앉는 것이었습니다.
가끔 보면 우리 모두는 기분 나쁠 준비가 안 돼 있는 거 같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이 아닌 이상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해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은 나를 기분 나쁘게 하면 안 된다고 여기며 오히려 자신은 그런 모습으로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고 살아갑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당연히 기분 나쁠 일이 발생하는데 그 당연히 발생하는 일을 스스로 거부하려고 하며 살아간다면 매우 경직되고 그 두려움 속에서 기분 나쁠 필요가 없는 일에도 기분이 상하여 화를 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기분 나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 때문에 이미 많은 에너지가 소진되어 작은 일에도 기분이 나쁠 준비가 된 상태로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 것과 베드로의 성전세를 내고 오라고 하십니다.
물론 당신은 성전의 주인이시니 낼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그들을 기분 나쁘게 할 필요는 없으니 물고기 한 마리를 잡으면 그 안에 돈이 있을 터이니 내고 오라는 것입니다.
안 내도 되지만 그들의 기분을 일부러 상해줄 필요는 없으니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예수님은 정말 인간의 아주 작은 감정까지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기분 나빠 화를 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님처럼 모든 이의 기분을 절대 상하지 않게 하며 살아간다는 뜻일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아무 행위를 하지 않아도 상대는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쁠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뱀을 보면 뱀이 나에게 아무 해를 끼치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자신이 아무리 잘 해도 뱀처럼 여겨지는 어떤 사람을 닮았을 때는 그 사람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타인에게 알게 모르게 아프게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 다치지 않으려 한다면 누구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런 두려움은 이미 힘들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는 합니다.
아프기 때문에 더 움츠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도 예수님처럼 타인의 감정에 책임을 져 줄 수 없는 사람임을 알고 타인도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그 상처가 관계 안에서 치유될 수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이 아프리카에 있던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그 학생을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자기가 하버드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인데 환영은 못해줄망정 만나주지도 않으니까 학생은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몹시 실망해 귀국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큰 비가 와 마을이 온통 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한센 병을 앓는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뛰어들어 구해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야 박사는 그를 불러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며칠 자네를 지켜보니 자네가 전혀 나를 만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네.
그런데 오늘 아이를 구해주는 것을 보고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한센 병 아이를 안을 수 있으려면 그 병이 자신에게 옮을 수 있다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기분 나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만나러 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입니다.
서로를 아프게 하지 않고 성숙되는 만남은 없습니다.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만남이 깊어질 수 없습니다.
항상 기분 나쁠 준비를 하고 세상으로 나아갑시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만 있으면 세상 모든 사람이 주는 모욕이나 멸시를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상처만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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