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31일 [연중 제17간 화요일]
예레미야 14,17ㄴ-22
마태오 13,36-43
<감정 폭력>
영화 ‘배트맨’에 ‘조커’라는 악당이 나옵니다.
조커는 항상 웃는 표정을 하고 나쁜 짓을 자행합니다.
그리고 심각한 사람을 만나면 “넌 뭐가 그렇게 심각해?(Why are you so serious?)” 라고 말하며 칼로 입을 찢어버립니다.
찡그린 모습이 보기 싫으니 입 꼬리를 올리라는 것입니다.
사실 조커도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똑같은 말을 들으며 폭행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가 항상 그렇게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간 채로 살아야 하는 것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심각하게 말하는데 상대는 웃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기분이 매우 안 좋습니다.
나는 웃는데 상대는 찡그리면 그래도 기분이 안 좋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상대가 자신의 감정을 따라와 주기를 바랍니다.
사실 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감정도 강요하지 말아야합니다.
감정을 강요하는 것도 폭력입니다.
강의할 때 어떤 분이 손을 높이 들고 큰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니까, 죄를 지어도 다 구원해주시지 않습니까?”
만약 다 구원해주신다면 그건 폭력을 쓰는 것입니다.
상대의 자유를 빼앗는 것을 폭력이라 합니다.
사랑은 그래서 강요하지 않습니다.
기차를 타려는 사람에게 언제든 표를 주는 것은 자비입니다.
그러나 그 표를 받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쥐어주어 기차를 태운다면 그건 폭력입니다.
관계는 상대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계 내에서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입입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가까워져야지 조급하게 하다가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맙니다.
특별히 가장 먼저 상처를 주는 것이 감정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상해가면서까지 관계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남의 인생에 참견하지 말아야 할뿐더러 남의 감정에도 참견하지 말아야합니다.
저도 강의를 할 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으면 조금씩 화가 올라옵니다.
공감해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울리거나 웃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존중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화가 난다면 내 자아가 커서 상대까지 내 맘대로 움직이려 하기 때문입니다.
내 감정이 나의 것이라면 상대의 감정도 상대의 것으로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들도 밭에 뿌려진 밀과 가라지를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마지막 때에나 가서야 실수 없이 구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조차도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상대가 가라지라고 밀이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건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항상 기쁘고 항상 감사해야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도 감정을 강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밀이 다칠까봐 가라지도 뽑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관계 안에서 이 조심성을 배워야합니다.
상대의 감정은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기쁜 상황에서 너는 왜 안 웃냐?”, 혹은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냐?”는 식으로 상대를 압박해서는 관계가 깊어질 수 없습니다.
나에게 폭력을 쓰는 사람을 누가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듯이, 폭력도 받는 사람이 씁니다.
흔히 내가 폭력을 당하는 것이 싫으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은 조금도 양보하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남에겐 강요합니다.
폭력을 당하는 것을 지극히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남의 자유를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자신이 경직되면 그 뾰족한 부분이 남을 찌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남과 닿는 점이 부드러워야만 합니다.
부드러우면 상대에게 상처를 입을 수는 있어도 상대를 상처 입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남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내가 폭력을 당하는 것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합니다.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주어야 하는 직업이 있습니다.
이를 감정노동이라고 합니다.
상대의 감정을 움직이고 싶다면 돈이라도 주어야지 주는 것 없이 나를 따라주지 않는다고 화를 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관계가 우선이라고 상대의 감정을 상해가면서까지 관계를 진전시켜서는 안 됩니다.
상대의 감정이 좋든 싫든 상대의 것은 상대의 것으로 인정해주어야 폭력 없는 인격적인 관계가 맺어질 수 있습니다.
감정을 강요하지 맙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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