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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7-29 조회수 : 415

7월29일 [연중 제17주일] 
 
열왕기 하 4,42-44
에페소 4,1-6
요한 6,1-15

<인간은 ‘만남’을 통해 자기 한계를 극복하는 존재> 
 

‘진화론’은 ‘생존을 위해 각 개체가 스스로 자기 한계를 극복해나간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진화론에서는 신(神)도 인간이 자기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내야만 했던 무엇으로 생각합니다.  
 
현재 이런 생각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극찬 받는 세계적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입니다. 
인간이 자기 한계의 극복을 위해 신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는 그의 이론은 이렇습니다. 
 
[내용이 기니까 ‘신이 지금의 인간을 만들었다는 결정적인 증거’ (1분 과학, 유튜브)를 먼저 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글로 읽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입니다] 
 
불과 7만 년 전 까지만 해도, 인간은 침팬지나 사자, 개똥벌레나 쇠똥구리와 같이 지구의 생태계에서 조그마한 영역만을 유지한 채, 다른 동물들과 어우러져 사는 한 종의 동물이었습니다.  
 
인간이 지구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지금의 여느 동물들이 가하는 영향력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은 세상을 지배하는 동물이 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바라볼 때 인간 개개인의 능력에 초점을 두고 생각합니다.
두뇌의 크기, 다양한 움직임이 가능한 신체,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능력과 불을 이용할 줄 아는 능력 등,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뛰어난 부분에 초점을 두고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물론 모두 어느 정도 맞는 주장이지만,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선 호모 사피엔스의 두뇌는 이미 20만 년 전부터, 현재의 우리들의 두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히려 지금보다 컸던 두뇌를 가지고 있었고, 불은 150만 년 전부터, 도구는 300만 년 전부터 각각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섬세한 손가락과 큰 두뇌로 자랑스럽게 깎은 날카로운 돌을 손에 쥐고 있다고 한들, 온 몸이 무기인 사자라도 만난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야생 적응력도 다른 동물에 비해 나은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침팬지 한 마리와 인간 한 명을 야생에 풀어두고 생존게임을 하라고 한다면, 둘 중 어느 쪽이 먼저 시체로 발견될까요? 
동물의 세계에서 인간 개개인의 능력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나약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요? 
유발 하라리는 그의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서 그 비밀이 바로 ‘이 조형물’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 조형물은 3만2천여 년 전에 만들어진 “사자-인간” 이라는 이름의 조각품으로, 1939년 독일의 동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조각품의 몸통 부분은 인간의 몸으로 되어있지만, 머리는 사자의 머리를 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이 조각품은 인류의 엄청난 비밀을 담고 있습니다. 
 
이 조각상에 담겨있는 인류의 비밀은 바로, 호모 사피엔스가 동물 역사상 최초로 보이지 않는 ‘환상의 존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는 능력이 인류를 세상의 지배자로 만듭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호모 사피엔스 개개인의 신체적 능력은 정말 보잘것 없습니다. 
그러나 특유의 사회성을 가진 사피엔스들은 서로 힘을 모아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 돕고 살아왔습니다.  
 
누군가 딸기를 채취하다가 저 멀리 어슬렁거리는 사자 무리를 발견하면, 그는 재빨리 동료들에게 달려가 “저기 산 너머에 사자가 있으니 가면 안 돼.”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입니다. 
그 메시지를 들은 호모 사피엔스는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산 너머에 사자가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호모 사피엔스는 보이지 않는 것도 믿을 수 있게 해주는 인지적 진화 과정을 거쳤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이 능력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능력이 ‘가상의 신’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은 의학적 지식이 없었던 시절, 버섯을 먹고 갑작스럽게 죽는 동료나,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는 기형아, 가뭄이나 홍수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미스터리한 일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연을 통제하는 환상의 존재, 즉, “신” 때문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는데, 이 신이라는 존재가 혈연으로만 맺어졌던 사피엔스들의 소규모 공동체를 피 한 방울 안 섞인 수많은 사피엔스를 한대 묶는, 대규모 공동체로 변화시키게 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적 동물이지만, 
신이 출현하기 전 그들이 이루고 살아가는 사회 규모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공동체는 혈연으로 맺어진 친가족으로 국한되어 있었고,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다른 부족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모두 경쟁 상대이자 적이었는데, 신의 출현 이후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초자연적인 신을 믿고, 다른 부족의 인간들도 똑같이 그 신을 믿는다면, 공통의 신 아래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연대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소규모의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던 사피엔스들은 유례없이 강력한 대규모의 집단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이 논리는 현대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천주교 신자는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사람이 같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에게 더 신뢰감과 친근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것은 개신교 신자나 이슬람 신자 등 다른 모든 종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현상입니다. 
 
이 이론은 인지 과학자이자 종교학자인 아라 노렌자얀의 저서 “거대한 신”에 나오는 이론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의 책에서 나오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현대에는 수많은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지만, 그들의 교리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고, 착한 짓을 하면 상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종교의 신들이 다 이렇게 도덕 선생님의 역할을 한 것은 아닙니다.
초기에 종교들은 대부분 비를 내려주거나, 맹수에게 물려 죽지 않도록 기원해주는 종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감시자의 역할까지 하는 신을 앞세운 종교들’만이 거대하게 번성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종교의 전지전능한 신이 호모 사피엔스 개개인의 행실을 항상 감시하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서로가 서로를 아는 사이가 아닐지라도, 같은 신을 믿는다면 “저 사람이 나를 속이지는 않겠구나.”라는 믿음으로 같이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따라서 모르는 남일지라도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 관찰할 수 있는 거대 종교들은 모두 하나같이 인간에게 도덕적인 행실을 권유하고 비도덕적인 행위는 처벌하는 권선징악의 종교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신뢰감으로 수 백 수 천 명이 같이 협동할 수 있게 된 호모 사피엔스들은, 기껏해야 30마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자들이나, 100여 마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침팬지들까지 손쉽게 제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인간의 유전적 진화라고 하기보다, 문화적 진화, 즉 신의 탄생으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침팬지와 호모 사피엔스 외에도 많은 영장류들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데, 그 공동체의 규모는 두뇌 신피질의 부피와 상관관계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것을 던바의 숫자라고 일컫는데, 신피질의 부피에 함수를 넣어 계산을 해보면, 침팬지는 생물학적으로 최대 120마리까지 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고, 인간은 최대 150명까지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답이 나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의 인지력은 생물학적으로 한계가 있어서, 서로 알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150명이 최대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페이스북에 등록되어있는 친구가 수 천 수 만 명이 되어도, 150명이 넘어가면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사는지 알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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