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8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 13,24-43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가리옷 유다는 나머지 11제자와 함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날 그는 은전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깁니다.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정작 어떤 사람은 첫 영성체 날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장본인이 된 것입니다.
가리옷 유다에게는 예수님의 살과 피가 구원을 위한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왜 같은 은총이 이렇게 상반된 결과를 나타내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서도 같은 밭에서 자라지만 어떤 것은 열매를 맺는 밀이 되는가 하면 어떤 것은 불속에 던져질 가라지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시스템’의 자이를 말합니다.
같은 이슬이라도 소가 먹으면 젖이 되지만 뱀이 먹으면 독이 됩니다.
이것이 시스템의 차이이고 본성의 차이입니다.
같은 요리사라도 해적선에 타고 있으면 악당이 되고 경찰선에 타고 있으면 애국자가 됩니다.
같은 돼지고기라도 어떤 시스템에 들어가면 햄이 되어 나오고, 어떤 시스템에 들어가면 소세지가 되어 나옵니다.
돼지가 하루는 암소에게 평소 자신의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암소야, 너도 보다시피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잘해주니?
사람들은 내 고기로 햄과 베이컨을 만들어 먹잖아?
또 내 창자를 빼내 순대를 만들어 먹고 심지어는 발도 족발로 만들어 얼마나 맛있게 먹니?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나를 싫어하고 너만 좋아할까?”
암소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죽어서만 좋은 일을 하고 살아있을 때는 너만 먹잖아!
그러나 나는 살아있을 때도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주고 또 맛있는 우유도 주잖아!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너는 싫어한단다.”
돼지가 사랑받기 위해서는 이전의 시스템을 벗고 살아있을 때도 무언가 남에게 줄 수 있는 소와 같은 새 시스템을 입어야합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자칫 오늘 복음이 이미 인간은 밀과 가라지로 결정이 되어있다는 식의 예정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역할이 없어집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이들이 당신을 통해 구원될 가능성이 있어야 구원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사실 우리 모두는 처음부터 다 가라지에 속합니다.
모두가 불속에 던져질 운명이었는데 그 가라지들 중에 어떤 것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본성을 변화시켜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어떤 식으로 우리 안에서 본성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일까요?
우리는 각자가 만들어놓은 시스템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모든 시스템은 어떤 목적을 향하고 있습니다.
해적선은 해적질을 하는 목적이 있고, 경찰선은 그런 해적을 잡는 일을 합니다.
햄을 만드는 기계에 돼지고기를 넣고 소세자가 나오길 기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처음에 다 가라지라는 시스템이었자면 이제 밀이라는 시스템으로 변화되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이 지향하는 것을 바꾸면 됩니다.
본성이나 시스템은 그것이 지향하고 좋아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뱀이었다가 산삼을 먹기 시작하면서 몸의 색소가 빠져나가 백사가 된 이 뱀은 더 이상 개구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었다면 더 이상 나뭇잎에는 관심이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좋아하고 지향하는 것으로 우리 본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우리 본성을 변화시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의 변화는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뱀이 백사가 되려면 반드시 산삼을 먹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산삼만을 좋아하게 되어야합니다.
2005년 일본인 돗토리 카즈미치 씨는 당시 9살이었던 돗토리 쇼지로 군을 데리고 한국에 관광을 왔습니다.
그런데 쇼지 군이 경찰차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했고 그 순간 순찰을 마치고 들어오는 경찰관에게 이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 경찰관은 흔쾌히 아들과 사진을 찍어주었고 머리에 자신의 모자까지 씌워주었습니다.
이 사진을 책상에 올려놓고 공부하던 쇼지 군은 한국 경찰관의 친절이 너무 좋아서 결국 자신도 경찰관이 될 꿈을 꾸게 됩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1년 당당히 경찰학교를 졸업하여 경찰관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고마워 한 아버지 돗토리 카즈미치 씨가 당시 사진을 들고 와 그 사진 속의 경찰관을 수소문해 찾게 되어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사가현 경찰기동대에 근무하게 된 돗토리 쇼지로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10년 전 한국 경찰관과 사진 찍었는데 그때가 너무 좋아 경찰이 되고 싶었다.”
좋아해야 닮게 됩니다.
가라지는 자신을 밀로 만들고자 하는 분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의 변화가 시스템의 변화입니다.
한 아이가 경찰관이 좋아지자 자신이 경찰관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가리옷 유다는 성체를 영하면서도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하지 않고 돈을 원했기에 결국 가라지로 남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면 좋은 시스템을 가진 밀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그분이 계명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당신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만 바란다면 가라지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모기가 예수님이 되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피를 빨아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고 남을 위해 피를 흘려주는 것을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기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있는 모든 이들은 시스템적으로 남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본성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가라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웃사랑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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