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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7-27 조회수 : 366

7월27일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독서 : 예레미야 3,14-17
복음 : 마태오 13, 18-23 
 
<씨를 받을 좋은 땅이란?>
     
한 조각을 잃어버려 이가 빠진 동그라미가 잃어버린 한 쪽을 찾아 나섰습니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에이야 디야 내 이제 찾아 나섰네.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구르다 마주친 벌레와 이야기도 나누고, 잠시 쉬며 꽃향기도 맡고, 지친 나비에게 등을 잠시 빌려주어 쉬게도 합니다. 
잃어버린 한쪽을 찾는다는 설렘에 산을 오르는 것도, 숲을 헤치는 것도, 더위도 추위도 힘들지 않습니다. 
 
결국 오랜 여행 끝에 잃어버린 한 쪽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 한쪽은 “나는 당신의 일부분이 절대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한 쪽을 만났는데 너무 헐거워 빠져버렸고 또 다른 한쪽은 너무 뾰족하고, 다른 것은 너무 커서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정말 딱 맞는 한 쪽을 찾았습니다. 
매우 기뻤습니다. 
그런데 너무 꼭 맞다보니 아주 빠르게 구를 수 있어서 벌레를 만나도 이야기를 못하고 꽃향기를 맡을 여유도 없고 나비를 등에 태워줄 시간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노래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차아구나, 마치내 차아그느, 어시구나 저시구느. 마치내...” 
 
딱 맞는 잃어버린 짝을 찾은 동그라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살며시 한 쪽을 내려놓습니다. 
 
‘이게 이런 것이구나.’
그리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갑니다. 
벌레와 이야기도 하고 꽃향기도 맡으며 나비도 쉬게 해주며...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에이야 디야 내 이제 찾아 나섰네.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참조: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 쉘 실버스타인] 
 
 
동그라미는 관계에서 오는 행복보다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면서도 끊임없이 관계가 필요하다고 노래합니다. 
어찌 보면 이 동그라미가 나의 모습이고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도 있겠습니다.  
 
관계란 것이 나의 무언가가 침해당함을 감수해야만 깊어질 수 있는데, 나는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내어주면서 외롭다고 말합니다.
내가 당하는 손해를 상대의 탓으로 여깁니다. 
 
관계가 유지되려면 내가 상대 때문에 잃는 것에 비해 상대 때문에 얻는 것이 더 많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 안엔 영원한 불만족이란 자아가 있어서 관계 때문에 얻는 행복을 잊게 만들고 손해 본 것만 생각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아기를 보면서는 태어나주어 감사하고 잠자는 모습까지 좋다고 하지만 학생이 되면 공부는 안 하고 잠만 잔다며 나무랍니다. 
내가 한 것에 비해 아이에게서 오는 것이 적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혼해 주어 감사해야 하겠지만 살다보면 그런 것은 사라지고 상대 때문에 고생한 생각만 남아 상대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습성이 고쳐지지 않으면 영원히 누군가와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또 이별을 반복하며 외로운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저 벌레와 꽃과 나비만을 주위에 두고. 예수님은 우리 밭에 심겨지시는 씨앗입니다.
씨앗이 심겨지면 밭의 영양분을 빼앗아 당신이 그 밭을 차지하게 됩니다. 
작은 씨앗처럼 뿌려지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것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됩니다. 
 
길로 상징되는 사람은 아예 씨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자신을 걸어 잠그는 사람입니다. 
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관계 안에서 상처를 아주 심하게 받아 큰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돌밭으로 상징되는 사람은 육체적인 사람입니다. 
관계를 육체에 한계지어 생각하니 육체적인 만족이 사라지면 이내 다른 상대를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고 십자가를 내미는 때가 되면 가차 없이 밀쳐냅니다. 
 
가시밭으로 상징되는 사람은 주님, 주님 하면서도 실제로는 예수님을 이용해 세상에서 성공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적인 손해를 끼치게 된다면 예수님 탓을 하며 밀쳐냅니다. 
 
좋은 밭도 30배, 60배, 100배의 각기 다른 양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와의 친밀함을 나타냅니다.
관계라 해도 다 같은 관계가 아닙니다. 
내가 상대를 위해 얼마를 잃어도 되는가에 따라 그 친밀함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다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도 100배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우선 내가 혼자 지내는 게 좋은지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 좋은지  결정해야합니다. 
만약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면 내가 상대 때문에 불편해지는 것은 잊어야합니다. 
그 관계가 유지되려면 상대에 대한 무한 감사만 남겨야합니다. 
그래야 그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상대는 나를 변하게 하기 위해 씨가 되어 오는 것입니다. 
상대는 나에게 오기 위해 죽어 내 땅에 묻히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상대를 변하게 하려면 씨앗이 되어 나도 상대 안에서 죽어야만 합니다.  
 
죽는다는 말은 불평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죽는다는 말은 감사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좋은 땅이 되려면 상대가 내 안에서 일으키는 변화를 죽은 듯 감당해내야 합니다.
좋은 땅은 불만이 사라지고 감사의 순종만이 남은 땅입니다. 
관계 맺을 준비가 된 땅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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