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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7-23 조회수 : 372
2018년 나해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표징 다음이 설교>
 
복음: 마태오 12,38-42


 오상의 비오 신부님은 평생을 오상의 고통을 안고 사셨습니다. 그런데 성지순례를 가서 그분의 유해를 보니 부패되지는 않았지만 오상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돌아가시면서 오상이 사라지고 다시 살로 덮였다는 것입니다. 막상 오상의 흔적을 볼 수 없다보니, ‘원래 없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불경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분이 보여준 순명과 인내, 겸손의 모습에서 오상의 흔적이 지워진 것은 그분을 존경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표징은 그 사람에게 오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의 가르침에 집중해야합니다. 그리고 가르침이 마음 안에 새겨지면 표징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고발하십니다. 그들은 기적을 보지 못해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기를 원치 않아 안 믿는 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당신이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는 요나의 기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물론 그것을 보고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나 예언자와 남방 여왕을 예로 드십니다. 요나 예언자의 설교를 듣고 큰 도시 니네베 사람들이 모두 회개하였습니다. 요나 예언자의 기적을 본 것이 아니라 설교를 듣고 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남방 여왕이 솔로몬 왕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멀리서부터 왔습니다. 표징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지혜를 배우러 와서 믿음까지 생겼던 것입니다.

 이렇듯 믿으려고 하는 마음만 있다면 표징 없이 설교만 듣고도 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더 높은 수준인데 설교를 들으러 와서도 계속 표징만 요구하는 의도는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치 않아 핑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미 와서 설교를 듣고 있다면 표징은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표징은 그 자리에 오게까지 하는 힘만 발휘하면 충분합니다.


 기적은 감정을 자극합니다. 만약 이 기적이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감정에서 이성으로 넘어가지 않는 표징은 이내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그런 표징에 집착하며 믿음을 유지하려 했던 사람들은 쉽게 믿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기적은 타 종교에서도 많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전에 기적이었던 것이 요즘은 일상이 된 것도 많습니다. 이전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거나, 폐렴을 주사 한 방으로 손쉽게 고치는 것을 보면 모두 기적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심지어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도 많이 합니다. 표징은 잠깐 감정을 자극하여 시선을 유도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표징만 찾아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하늘의 표징을 찾기 위해 하늘만 바라보다가 눈이 멀 수도 있습니다. 이미 그분 앞에 왔다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해하면 표징은 소용이 없어집니다.


 기도할 때 손이 떨린다던지, 하늘에 표징이 나타났다던지, 성체 영할 때 혀가 뜨거워졌다던지, 병이 치유되었다던지 등의 표징들은 이제 이성적으로 공부하라는 이정표로 여기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 표징을 자신들이 특별해서 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표징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 이상한 종교집단을 만듭니다. 표징을 보여주시는 단계는 아주 낮은 단계입니다. 그 위가 이성으로 이해하는 단계입니다. 감성적인 것에만 머무르려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표징 다음이 설교입니다.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보면서도 젖을 먹었던 것을 기억 못한다고 다시 젖을 달라는 자녀가 있다면 얼마나 한심한 일이겠습니까? 하느님을 이성적으로 알아가기 시작했는데도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표징을 요구하는 세대는 악하고 비뚤어진 세대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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