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1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미카 2,1-5
마태오 12,14-21
<당신이 보는 희망은 나의 투쟁의 열매입니다>
오돈 부부에게는 로렌조라는 5살 난 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불행이 닥쳐오는데 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ALD라는 진단을 받게 되고 2년 안에 죽게 된다는 비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치명적인 죽음의 질병 앞에 오돈 부부는 굴복하지 않습니다.
오돈 부부는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ALD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관련된 서적도 적고 전문의들은 조직화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ALD 심포지엄을 조직하기에 이르고 그들이 전문가가 됩니다.
오돈 부부는 ALD가 나쁜 지방산이 배출되지 않아 뇌에 축적되며 생기는 병이므로 나쁜 지방산을 제거해 주면 되지 않겠냐는 논리에 다다릅니다.
효과는 있었지만 나쁜 지방간 수치가 절반 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쳐갔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1984년 4월, 로렌조 아버지는 식용이 가능한 불포화 지방산을 발견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게 되고 생화학자에게 의뢰하여 하루도 쉬지 않고 연구한 끝에 1kg의 소중한 기름이 오돈 가족에게 보내집니다.
그 이후로 이 기름은 ‘로렌조 오일’이라 불리고 ALD를 앓고 있는 모든 소년들에게도 공급되고 있습니다.
이 기적을 탄생시킨 오돈 부부는 의학지식은 전혀 없는 부부이지만 아들에 대한 깊은 사랑 하나로 전문의도 해낼 수 없었던 의료 역사상 길이 기억될 업적을 탄생시켰고 로렌조는 호흡기를 떼고 눈 깜빡임으로 의견을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되어 30살까지 생존하였습니다.
[참조: 영화 ‘로렌조 오일’(1992)]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나의 절망과 싸워야합니다.
내 절망은 ‘너는 안 될 거야.’란 생각입니다.
그 생각과 끊임없이 싸워야 상대에게 ‘넌 할 수 있어.’란 말을 해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의 부모가 한 아이를 위해 저런 큰 싸움을 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실까요?
죽음도 불사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주신 희망을 우리는 저버리지 말아야합니다.
그분이 주신 희망은 그분의 죽음과도 같은 싸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가지고 계신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블랙’이란 영화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해 짐승처럼 사는 아이에게 아버지는 종을 달아줍니다.
어디에서 사고 치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를 고쳐보겠다고 온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짐승 취급하는데, 누가 아이를 존중해주겠습니까?”
이 영화는 헬렌 켈러를 모티브로 합니다.
헬렌 켈러에게 희망을 가졌던 이는 자신이 그런 비슷한 경험에서 빠져나왔던 설리반 선생이었습니다.
설리반 선생은 아이였을 때 정신병원에서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건들기만 해도 발작을 하고 공격을 하였습니다.
병원에서는 ‘로라’라는 할머니에게 그 아이를 맡깁니다.
그 할머니는 애니(설리반)가 동생이 죽은 후 그런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애니는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되지만 병원은 무관심합니다.
로라는 애니를 집으로 데려가 엄마처럼 돌보아줍니다.
애니는 비로소 마음을 엽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남은 건 동생뿐이었는데 동생마저 죽자 너무나 무서웠다고 합니다.
로라는 애니를 안아줍니다.
애니는 치유를 받습니다.
그리고 기적을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은인을 만나 눈을 치료하게 되었고 48년 동안 헬렌 켈러의 스승이 됩니다.
상처받은 치유자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상처받은 치유자입니다.
그리스도의 투쟁으로 우리가 희망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른 이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그 희망은 내 안의 절망을 이길 때 발산됩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힘을 줄 수 없습니다.
기적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가진 자만이 줄 수 있습니다.
이 희망은 누군가의 희망으로 내 절망이 치유되었을 때 가지게 됩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희망은 내 안의 절망과 싸우게 만듭니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싸우는 것만이 가치 있는 것입니다.
희망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집니다.
누구든 불가능은 없다고 믿어줍시다.
우리도 많이 변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습니다.
모든 이가 구원될 거라는 희망을 가집시다.
나도 구원받았지 않았습니까?
마더 데레사는 온 천국을 가난한 사람으로 가득 채우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면 희망합니다. 희망하는 만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기대를 놓게 될 때 사랑도 놓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면 사랑도 절대 꺼지지 않습니다.
스와일리 전사의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투쟁하는 삶만이 의미가 있다.
승리냐 패배냐는 신이 결정할 일이니, 투쟁을 축하하자.”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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