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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7-20 조회수 : 356

7월 20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독서 : 이사야 38,1-6.21-22.7-8
복음: 마태오 12,1-8

<하느님을 만났다는 증거>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를 했다는 말에서 나옵니다.  
 
맹자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입니다. 
그는 무덤가에서 친구들과 놀더니 점점 곡하는 것을 따라하고, 장사(葬事)지내는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맹모는 공동묘지 인근에서 시장으로 집을 옮겼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놓인 어린 맹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시장에서 흥정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친구들과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흉내를 내며 놀게 되었습니다.  
 
맹모는 다시 이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서당 근처였습니다. 
맹자는 새로 만난 친구들과 책을 넘기고 놀거나, 절하기 등의 예법을 따라하며 놀았습니다. 
 
이 예화는 맹모가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교육을 위해서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으로 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일부는 맹자의 어머니가 삶과 죽음, 그리고 실제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큰 의미의 공부(工夫)를 먼저 시작한 후에 책을 읽는 공부에 들어가게 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공부에 아이의 의지가 중요할까요, 환경이 중요할까요? 
의지가 아무리 약해도 공부해야만 하는 환경이 주어지면 어느 정도는 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는 것입니다.  
 
다 공부하는데 자신만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느낌 때문에 집에서보다 공부가 더 잘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망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 안에 공부를 하고 싶은 의지와 하기 싫은 의지가 싸우는데, 하고 싶은 의지를 더 성장시켜 줄 환경이 있고 하기 싫은 의지를 성장시켜주는 환경이 있을 뿐입니다. 
 
맹모삼천지교와 함께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비슷한 말로는 화북에 심으면 탱자가 되고 화남에 심으면 귤이 된다는 의미의 귤화위지가 있습니다. 
좋은 학군이 있는 쪽의 집값이 비싼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심겨진 환경이 나를 만듭니다. 
 
그런데 환경 중의 가장 중요한 환경은 무엇일까요?
‘사람’입니다. 
사람은 사람과 가까운 것일수록 더 잘 따라합니다. 
나무와 개가 함께 있다면 사람은 나무보다 개를 더 따라합니다.  
 
공동묘지나 시장이나 서당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맹자는 그 어떤 놀이도 즐겁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공동묘지에서 사람이 장사지내는 것을 보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서당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을 보고 따라하게 된 것입니다. 
행복하려면 행복한 사람들 가운데로 가라고 말합니다. 
우리를 바꾸는 ‘진짜 환경’은 바로 우리 주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누구를 만나기를 선택하느냐가 내가 누가 되기를 선택하느냐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 나가신 것은 홀로 계시려는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와만 함께 계시기 위해 광야라는 환경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히즈키야 왕이 나옵니다. 
그는 선친과 다르게 이방 민족과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하느님을 신뢰하며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가 병들어 죽게 생긴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사야를 보내시어 죽게 될 것이니 준비를 하라고 시킵니다. 
그가 죽게 된 것 때문에 울자 하느님은 불쌍한 마음이 들어 그에게 15년이란 시간을 더 주십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그를 치료해 주십니다. 
 
히즈키야 왕은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느님은 태양을 뒤로 돌려 그의 부친 아하즈의 해시계를 열 칸 뒤로 돌려주겠다고 하십니다.
     
태양을 뒤로 돌리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런데 열 칸에서 열은 율법을 상징합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만나야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히즈키야 왕이 15년을 더 살게 되는 것도 자신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면 하느님만이 해 주실 수 있는 것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아하즈의 해시계’일까요? 
히즈키야 왕의 선친 아하즈는 아시리아와 동맹을 맺었던 인물입니다. 
아시리아는 이방민족입니다. 
아하즈가 아시리아와 동맹을 맺었다는 말은 자신의 환경을 하느님이 아니라 
사탄의 손에 넘겼다는 말입니다. 
그는 사탄과 동맹을 맺어 이웃사랑의 계명을 어겼습니다. 
 
하지만 히즈키야에게는 당신 은총으로 그의 마음 안에서 용서와 사랑의 마음이 솟아나게 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도 용서하지 못하는 누군가를 기도를 통해 용서하게 되었다면 그것이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가장 큰 징표가 될 것입니다.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고정원 씨는 자신의 일가족을 죽인 유영철을 용서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고정원 씨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밤새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음 날은 5분 정도 미움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기도의 힘을 믿었고 그러면서 하느님의 존재도 더욱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1년 전보다 이웃을 더 사랑하고 있다면, 용서하는 것이 더 쉬워졌다면, 아무도 미워지지 않는다면 그건 그런 환경을 조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환경이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십니다. 
나의 사랑이 증가하고 있다면 그는 하느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난다고 하면서 미워하는 사람을 계속 미워한다면 사실 그는 하느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중에 실제로는 악의 세력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배를 흐르는 물 위에 띄우면 떠내려가는 것이 당연하듯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만나면 변하게 됩니다. 
내 변화의 흐름이 내가 만나는 분이 빛이신지 어둠인지 분별하게 해 줍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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