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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1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7-18 조회수 : 332

7월18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독서 : 이사야 10,5-7.13-16
복음: 마태오 11,25-27

<권불십년(權不十年)> 
 

중국 온 천하를 최초로 통일시킨 진시황은 ‘덕은 삼황(三皇)보다 낫고 공적은 오제(五帝)보다 높다’라고 하여, 삼황오제(三皇五帝)의 글자를 따서 황제(皇帝)라는 칭호를 최초로 사용한 인물입니다.  
 
자신은 첫 번째 황제이므로 ‘始(처음 시)’를 써서 ‘시황제(始皇帝)’라 하였고, 아들을 이세 황제, 그 다음을 삼세 황제라 하여 자자손손 만년토록 권력이 이어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기세등등했던 진시황의 왕조는 이세 황제인 호해(胡亥)에 이르러 2대 15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맙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도 10년을 가지 못한다는 말로 권력을 쥐었을 때 사라질 것을 미리 생각하라는 지혜가 담겨있는 말입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이 10년 가기 힘들다는데 보통 권력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권력을 잡으면 그 권력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빠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여 주시지 않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세상 권력도 결국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에 동의하십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예수님께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세금을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나라 땅을 강제로 차지하고 지배하는 나라에 세금을 내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상 권력에 순종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런 예는 바오로 사도나 베드로 사도의 편지에서도 많이 나타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해야하고, 어린 사람은 나이 든 사람에게, 종은 주인에게 순종해야 하며(콜로 3,22; 1베드 2,18 참조) 심지어 자신이 살고 있는 모든 제도에 복종하라고 말합니다(1베드 2,13 참조). 
 
그렇다면 우리가 촛불집회를 했던 것이 잘못되었던 것일까요?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체제에 저항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요? 
흑인 독립을 위해 전쟁을 해서는 안 되었던 것일까요?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적어도 순종하여 죄를 짓게 되는 경우라면 분명 권력과 체제에 반항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범죄가 저질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신고만 하면 되는데 하지 않아서 범죄가 저질러진다면 그것을 보고도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도 책임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나를 범죄자로 만드는 집단에서는 그 체제에 저항을 할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해적선에 타서 자신도 똑같은 해적이 되는 상황이라면 그 체제에 저항해야 해적질을 하지 않게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권력을 가진 이들의 의식입니다. 
피지배층이 되는 것도 권력층이 되는 것도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여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권력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즉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모든 권력은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지도자라면 적어도 국민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권력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주시고 주님께서 가져가실 수 있기에 권력이 10년 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혼내는 ‘아시리아’란 국가가 그런 상황입니다.
아시리아는 하느님을 섬기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지만 당대 가장 강한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혼내야 할 일이 생겨서 하느님께서 아시리아를 강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리아가 자신의 힘을 믿고 날뛰기 때문에 하느님은 이런 예언을 하게 하십니다.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마치 몽둥이가 저를 들어 올리는 사람을 휘두르고 막대가 나무도 아닌 사람을 들어 올리려는 것과 같지 않으냐? 
그러므로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그 비대한 자들에게 질병을 보내어 야위게 하시리라. 
마치 불로 태우듯 그 영화를 불꽃으로 태워 버리시리라.” 
 
아시리아의 멸망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영화와 권력은 하느님께서 원하면 주시고 또 원하실 때 거두어 가실 수 있습니다.  
 
아시리아의 경우처럼 세상의 힘은 그 나라가 합당해서라기보다는 필요하기 때문에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권력이라 생각하면, 적어도 국민으로부터 권력이 나온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데 사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필요에 의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필요가 없어지면 금방 가져가실 것이 세상 영화이고 권력입니다.  
 
있다고 자랑할 필요도 없고 없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도 이런 경우를 명확히 목격하고 있습니다. 
권력이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면 결말은 언제나 좋지 않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모든 권력에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종들에게 착한 주인에게만 순종하려하지 말고 악한 주인에게도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렇게 끝맺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1베드 5,5)
권력이나 힘이나 지위나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안다면 결코 교만해 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자리에 앉든 그 자리에 앉혀주신 분이 원하는 일을 하려고 마음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권력을 잃었을 때 굴욕을 당하지 않습니다.  
 
항상 아무 힘도 없는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힘을 사용한다면 그 힘을 잃었을 때 더 보람된 대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모는 나이가 들어 힘도 돈도 없을 때를 생각해야하고, 성직자는 가난하고 힘없는 신자가 된 것처럼 살아야하며, 권력자는 다시 한 시민이 되었을 때를 생각해야합니다.  
 
이런 지혜는 모든 힘은 주님에게서 오고 모든 권력의 주인은 하느님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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