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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8일 -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18-07-08 조회수 : 349

자신을 믿으면 안되는 이유

 

   1998년 호주에서 심장마비로 사망선고를 받은 빌 모건이라는 한 남자가 14분 만에 다시 살아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트럭운전을 하며 작은 이동식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퇴원하는 기념으로 긁는 복권을 샀습니다. 그런데 평생 처음 산 복권에 당첨이 된 것입니다. 약 1500만 원 정도 되는데 그는 그 돈으로 평소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자신 소유의 트럭을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뻐하고 있을 때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길에서 만나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이에 행운의 사나이라는 이유로 TV 쇼에까지 출연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도 사람들은 ‘살다보면 저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TV쇼에서 자신이 복권에 당첨된 가게에 가서 당시 복권에 당첨된 사연을 재연하다가 다시 복권에 당첨됩니다. 그는 복권 한 장을 구입해 긁었는데 이번엔 2억 원이나 되는 복권에 당첨된 것입니다. 그는 그 돈으로 새 집을 삽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도 모자라 단 두 장 산 복권으로 차와 집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출처: ‘행운의 사나이’, 서프라이즈]

 

      빌 모건의 삶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누가 저런 삶을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 삶은 예상 가능할까요?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예상 밖의 상황을 너무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삶이 예상대로 흘러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오늘 하루의 삶과 한 사람과의 만남도 아침에 예상한대로 흘러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한 인생을 놓고 보면 거의가 어렸을 때 예상했던 삶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25살 때까지 사제가 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는데 지금 사제가 돼 있습니다.

      인간이 아주 대단한 지능을 가진 것 같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개미보다도 못합니다. 그런데도 가끔은 하느님이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자신과 타인의 삶을 예상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교만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나자렛에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판단으로는 한 동네에 살던 예수가 메시아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분명 목수의 아들인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믿으면 하느님을 믿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섭리 앞에서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요? 자신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당시 나자렛 사람들처럼 믿음이 약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믿는 교만함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저희 동창신부 아버지는 사고로 온 몸이 불에 타 사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안실로 옮기는 중에 살아나셨습니다. 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곧 다시 죽게 된다는 말을 듣습니다. 사고로 입과 눈이 눌러 붙어있었지만 의식은 선명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체 한 번만 영하고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새벽이 되니 온 몸이 불에 타는 듯 뜨거워지고 두 시간 동안 불에 탄 딱지가 다 떨어져나가며 어린이와 같은 새 피부가 돋아났습니다. 그 병원이 수원 성 빈센트 병원이었기에 아침 6시 미사에 가서 성체를 영하고 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죽어가던 환자가 사라져서 난리가 났습니다. 아버님이 자신의 병실로 돌아오자 모두 친척 되시냐며 환자가 어디 갔는지 아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분은 “제가 그 환자입니다.”라고 몇 번이고 말해도 그들은 믿으려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못할까요? 하느님의 능력은 믿지 못하고 자신을 더욱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안 믿는 것이 더 안전합니다. 많은 사고는 자신을 지나치게 믿을 때 발생합니다. 믿으면 더 쉽게 속게 됩니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속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다 자신에게 속는 것입니다. 타인의 생각이 자신 안에서 해석되어 자신의 생각을 믿게 되는 것이 결국 타인에게 속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타인의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입니다. 결국 내 생각을 믿고 나를 믿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바로 믿어버리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을 굳게 믿는 교만한 사람이라면 속이기가 더 쉽습니다. 자신만을 믿기 때문에 그것만 설득시키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런저런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근거들만 들어주면 쉽게 믿어버립니다.

      하지만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속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납득할만한 이런 저런 좋은 이유를 설명해도 자신의 생각을 믿지 않기 때문에 쉽게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자신을 믿지 않는 삶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 삶입니다. 자기를 믿는다는 것은 생각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 때문에 두려움이 일어나고 생각 때문에 걱정이 생기며 생각 때문에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을 기도시간이라 합니다. 내가 생각하지 않으면 내 앞에 내 생각에 가려져 계시던 주님이 등장하십니다. 그분과의 대화는 내가 생각을 끊을 때 시작됩니다. 그러면 내 삶이 그분께 맡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획하고 걱정하며 살아갈 때보다 에너지는 훨씬 덜 들어가고 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는 자신을 믿는 것에서 하느님을 믿는 것으로 옮아가는 시간입니다. 하와가 뱀을 믿었고 아담이 하와를 믿었듯 자신의 생각을 믿다가는 구원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물 위를 무작정 걸었던 베드로처럼 우리도 그분께 오롯이 의탁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에 대한 신뢰를 점점 하느님께 두게 될 때 예수님이 나타나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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