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과 죄인임을 아는 이>
제가 아는 분이 얼마 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갈비뼈 두 개에 금이 갔습니다.
폐차를 해야 할 정도로 큰 사고였습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상대 차가 옆을 박았는데 운전석 10cm 뒤에 박아서 그 정도만 다치셨습니다.
상대방 차가 운전석을 받았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한 것입니다.
저도 군대 있을 때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큰 군용트럭을 몰고 가는데, 길가로 지나가는 노란 옷을 입은 유치원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빨간 불이라 갑자기 정차를 하려했지만 네 바퀴 중에 한 바퀴만 브레이크가 작동되어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지만 꽤 긴 거리를 밀려가서 앞에서 나오는 프라이드 승용차를 박았습니다.
꺾는다고 꺾었지만 상대 앞바퀴 쪽을 쳤고 프라이드는 산산조각이 나며 인도로 떨어졌습니다.
처음 낸 사고다보니 어찌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이게 현실이 아니기 만을 바랐습니다.
경찰은 상대 운전사의 뼈에 금이라도 가면 상당히 심각해진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큰 사고였음에도 온 몸에 타박상만 들었지 뼈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상대방 타이어가 충격을 많이 흡수해 준 것 같습니다.
그분이 또 천주교 신자라 선처를 해 주셔서 병원비와 차 값만을 물어주고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군용차는 보험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개인이 합의금을 낼 수 없다면 영창을 살아야만 합니다.
만약 그 때 바퀴가 아니라 10cm 뒤쪽으로 사람을 쳤다면 저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었고 그러면 가난한 저희 집에서 합의를 할 수 없게 되어 저는 오랜 기간 영창을 살아서 지금의 저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뼘 차이로 살인자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죄인과 의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고 의인이 죄인이 되는 것은 한 뼘 차이입니다.
그러니 죄인이라 실망할 것도 없고 의인이라 우쭐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의인이 없다는 것이 진실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죄인과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죄인 밖에는 없습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죄인은 심판관이 되어 타인을 판단할 것이고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죄인은 모든 이를 자신보다 낫게 여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에 적당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일까요, 아니면 죄인임을 아는 의인일까요?
하느님 나라에서 서로 비난하고 질책하고 판단한다면 거기는 하늘나라가 아닐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가장 비천한 죄인도 안고 품어줄 수 있는 자비가 넘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의인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을 아는 사람을 찾으실 수밖에 없습니다.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세리인 마태오도 당신 사도 중 한 사람으로 뽑으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자비롭지 못한 이유는 자신도 죄인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라고 하면서 타인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재를 묻히고 다니면서 똥을 묻히고 다니는 개를 나무랄 수 있을까요?
전쟁에서 50보 도망간 사람이 100보 도망간 사람을 나무랄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타인을 판단하고 심판하면 그것 자체가 자신은 의인의 자리에 서겠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선인지는 판단할 수 있어야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그 사람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간음한 여자 앞에서 그 여자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의인이었고 나머지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심판하지 않으셨다면 누구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을 부르러오셨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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