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의 부활 이야기
[말씀]
■ 제1독서(사도 5,12-16)
사도행전은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확산을 매우 서정적인 필체로 묘사하기에 앞서, 교회가 세상에 전파되면서 부딪혀야 했던 온갖 곤경에 관한 기사를 앞세웁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승리로 탄생할 심오한 현실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자비를 기초 삼아 하나 된 백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류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며, 이 인류는 오로지 천주 성령의 인도에 자신을 내맡길 것입니다.
■ 제2독서(묵시 1,9-11ㄴ.12-13.17-19)
박해의 어려움 속에서도 요한묵시록 저자는 그늘에 가려져 있던 현실에 대한 계시로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세계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에 글을 쓰면서 그는 역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함께 하셨으며, 당신 부활로 드러날 완성을 향하여 이 역사를 이끌어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눈에 보이는 현실로 말미암아 좌절하지 않도록 당신을 믿어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늘 희망을 선사하시는 분입니다.
■ 복음(요한 20,19-31)
복음저자 요한은 단 하나의 이야기 안에 세 가지 장면, 곧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당신 모습을 드러내심과 성령을 보내심과 죄의 용서를 위해 당신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심을 요약해서 전해 줍니다. 복음저자 루카와는 달리 요한에게 주님 부활과 성령 강림 사건은 동일한 기본적 사건의 양면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아울러 사도 토마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부활사건 이후에도 사도들의 신앙은 여전히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부활사건은 역시 사랑과 믿음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었으며,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새김]
매년 부활 제2주일 미사에는 오늘 복음 말씀이 봉독 됩니다. 여드레 뒤에라는 표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사도단의 부활 체험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사도들이, 지상에서 당신의 구원사업을 이어나가도록 몸소 선택하시고, 늘 곁에 두고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쳐온 사도들이 앞장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증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한, 의심의 대명사 토마스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합니다.
토마스는 부활이 아니라 아직 죽음의 상태, 곧 무덤을 벗어나지 못해 쩔쩔매던 사람입니다. 주님의 상흔, 손과 발의 못 자국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사람의 감각 기관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믿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것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짐으로써, 다시 말해서 감각 기능으로 판단하거나 처리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감각이라는 것이 인간의 마음처럼 변덕스럽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때와 장소, 혹은 기분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인식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감각입니다. 똑같은 사물을 놓고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게 하고, 똑같은 음식을 섭취하면서도 시장기에 따라 맛을 다르게 느끼게 하는 것이 감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믿지 못할 것이 감각 기능입니다. 그런데 이 감각으로 믿음을 가늠하겠다고 하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믿음이 자신의 운명과 삶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행위이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감각으로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감각이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때가 더 많습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하는 속담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기보다는 매사에 실수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하라는 가르침인데도, 믿음이 없으면 어떠합니까? 두들겨 보고 또 두들겨 보고서도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불신이 앞서면 결코 건너지 못합니다. 의심 많은, 믿지 못하는 토마스를 통해 우리가 다시금 살펴야 할 상식적인 지점입니다.
토마스를 좀 더 가까이 보았으면 합니다. 토마스는 한때 다른 제자들의 모범이 되던 사람, 주님의 죽음을 예감하고서는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제안했던 사람입니다. 그러했던 그가 철저한 냉담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 걸었던 희망이 컸던 만큼 그분의 참혹한 죽음이 주었던 충격도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상 처절한 죽음 앞에서 믿음과 희망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좌절과 불신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아직도 죽음의 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토마스를 죽음에서 건져내시려 그에게 다가오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이 절망과 불신과 두려움이라는 죽음에서 토마스를 구원해내십니다. “보고서야 믿는” 처지를 뛰어넘어 “보지 않고도 믿는” 수준으로 차가웠던 토마스의 믿음, 죽어버린 믿음을 다시 끌어 올리십니다. 그리하여 (미사에서 사제가 성체와 성혈을 들어 올릴 때, 우리가 마음속으로 외치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신앙고백으로 인도하십니다. 이처럼 토마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차원의 부활 이야기, 우리가 살아야 할 부활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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