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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3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5-04-23 조회수 : 81

알 수 있는 마음은 사실 실제의 1/7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빙산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빙산에서 물 위에 있어서 사람들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1/7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6/7은 물 밑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대로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실제로 불안과 갈등이 계속 있는 것이고, 또 각종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꼭 100% 알아야만 할까요? 알 수 없는 것을 알려면 커다란 힘이 필요합니다. 만약 중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중국 책을 공부한다면 쉬울까요? 당연히 엄청난 힘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남의 마음을 아는 것도 이렇습니다. 그래서 겸손의 덕, 즉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갖춰야 합니다. 이를 통해 충분히 지금을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겸손과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자기 마음도 제대로 알 수 없는데, 상대의 마음을 얼마나 알 수가 있을까요? 오랫동안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분들도 상대 마음을 몰라서 싸우지 않습니까? 특히 무엇보다 내 마음인데, 상대방이 내 마음을 평가하고 저울질하면 속상하고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싸우게 되고, 여기에 엄청난 힘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나도 내 마음을 100%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이것이 좋고, 다른 때는 저것이 좋다고 말하는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존재입니다.

 

마음을 몰라준다고 억울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모르겠다고 힘들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보여주신 겸손과 사랑을 통해 우리는 마음에 상관없이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제자들이 왜 엠마오로 가고 있었을까요? 박해를 피해서 도망치는 중이라면, 예수님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 함께 걷는 예수님에 대해 말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예수님 죽음 이후 자기 생업으로 돌아가려 했던 베드로(요한 21,3 참조)처럼 실망감으로 가득 차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몇몇 여자의 증언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증언입니다. 문제는 당시 여자의 증언을 인정하지 않았던 분위기를 따라 몇몇 여자의 증언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마음이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특히 빵을 떼실 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았던 주님께 대한 마음이었지만, 제자들도 예수님 죽음 이후 변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원래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들은 충분했고, 주님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은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키르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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