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4월 22일 _ 김건태 루카 신부

작성자 : 김건태 작성일 : 2025-04-21 조회수 : 114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 부활 대축일 낮미사 때 봉독된 말씀을 바로 뒤따르는 부분입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에 가서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는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전한 다음의 일입니다.

 

내용상으로 보면, 제자들이 다녀간 다음에도 마리아 막달레나는 여전히 무덤에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여인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따랐고, 지금도 예수님을 잃고 큰 슬픔과 고통 속에 잠겨, 근심 걱정 속에 울며 하소연합니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실 때 그 현장에 있었기에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예수님을 다른 곳으로 모셔간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다는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루카 복음 저자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로 소개하며(루카 8,2), 이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모두 열두 번 언급됩니다.

예수님의 치유 은총으로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뒤에,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여인들과 함께 자기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을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었고(루카 8,2-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마지막까지 십자가 곁을 지켰으며, 무덤에 모실 때도 그 맞은쪽에서 지켜본 여인,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아 큰 사랑을 드러낸 여인이었습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것도, 그분의 부활을 확인하려 함이 아니라, 돌아가신다음에도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향료가 언급되어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주검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데 대상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많은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 사랑의 마음을 심어주셨던 예수님이 가까이 다가와 서 계시지만, 알아보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인 줄은 몰랐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동안 소중히 간직해 왔던 사랑의 마음으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뵙는 데는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아니, 누군가 주님을 모셔갔다는 초조감과 불안감으로 훼손된 그 사랑을 완성으로 이끌어 주님 부활 신앙으로 건너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주님의 개입이 또 한 번 필요했습니다.

주님의 사랑, 구체적으로 그분의 사랑이 묻어나는 부르심, 마리아야 하는 사랑의 음성이 필요했습니다. 이 사랑의 음성이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켜, 라뿌니!”를 불러내며, 나아가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는 신앙고백으로 이끕니다.

 

부활 신앙은 전적으로 사랑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사랑으로 가르치시고 행적을 보여주셨으며, 끝내 그 사랑을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완성하셨기에, 사랑 없이는 부활 신앙고백도, 부활 신앙생활도 불가능함을 오늘 다시금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시 한번 주님에게서 오는 사랑임을 확신합니다.

오늘 하루 그 대상이 누구이든 사랑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가운데, 부활 신앙인임을 힘껏 뽑내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