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나쁜 일이 생겼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하겠다.”
한 단어, ‘하지만’과 ‘그리고’의 차이일 뿐이지만 전혀 다른 내용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은 나쁜 일을 이겨내겠다는 의미가 있고, ‘그리고’는 나쁜 일을 인정하고 그냥 함께 살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둘 다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한 단어만으로도 포기, 좌절하지 않고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하지만’이나 ‘그리고’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면, 뒤 이어 나오는 ‘이런 선택을 하겠다’라는 말도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나에게 나쁜 일이 생겼다’라면서 기분 나빠하고 힘들다면서 불평불만으로 그치고 맙니다. 그러나 계속할 수 있는 한 단어의 사용으로 인해 지금과 전혀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많은 변화, 많은 노력, 많은 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에 정말 많은 것이 필요할까요? 앞서 본 것처럼 단어 하나만으로도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과 행적에 소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처할 수 없는 커다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힘으로 많은 성인·성녀께서 하느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만찬에 앞서 종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면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시면서 마지막 만찬을 행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미사를 통해서 재현됩니다.
단순히 연중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과 행적에는 커다란 힘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재현하면서 우리는 그 힘 안에 머물게 됩니다. 그 힘으로 이 세상을 힘차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어떤 고통과 시련에서도 극복할 힘이 생기고, 어떤 어려움에서도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는 지혜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의 참여가 필요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15)
오늘 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합니다. 이 기간에 주님의 사랑에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하느님 나라 영광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내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할 일은 오늘이 좋은 날이며 오늘이 행복한 날이 되게 하는 것이다(시드니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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