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어제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중풍병자를 치유하시는 모습을 보고서 안식일 법을 어기신다고 고발하면서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아버지께서 그러하신 것처럼 당신도 일하고 계심을, 안식일에도 일하고 계심을 밝히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이 신념에 찬 말씀이 유다인들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하느님이 자신의 아버지이기나 한 듯, 어떻게 하느님에 대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들을 더욱 분노케 한 요인은, 예수님이 아버지와 당신은 협업 관계에 있음을 천명하며, 아들인 당신을 공경하지 않는 행위는 바로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 행위라는 사실을 덧붙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생명을 줄 능력이 있는 말씀임을 선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유다인들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말씀이라 하더라도,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언자들이 힘주어 전했던 하느님의 말씀과 차원이 전혀 다른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심으로써 그 조건을 온전하게 그리고 촘촘하게 알고 계신 우리의 형제요 벗이요 스승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토록 철저하게 우리 가슴에 와 닿고, 우리의 이성과 지성과 영성 안에서 놀라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모든 복음적 계획을 담고 있고, 하느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꼭 갖추어야 할 품행을 제시하는 산상설교에서, 우리는 우리의 형제요 벗이요 스승이신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봅니다.
간음한 여인과 죄 많은 막달레나와 키 작은 자캐오와 배반한 베드로와 회개한 우도에게 건네진 용서와 자비 선언에서, 우리는 우리의 형제요 벗이요 스승이신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봅니다.
여러 가지 비유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하느님께 직접 인도하는 빛나는 가르침에서, 우리는 우리의 형제요 벗이요 스승이신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봅니다.
십자가의 길에서와 마찬가지로 부활의 영광을 향한 길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처럼 당신 제자들을 준비시키시는, 고통스럽지만 용기를 주는 경고의 메시지에서, 우리는 우리의 형제요 벗이요 스승이신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봅니다: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아버지 하느님과 온전히 뜻을 맞추어 일하시는 분,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분입니다. 그 뜻에 따라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치셨고,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세상과 인류 구원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들어 실천에 옮기도, 그분의 행적에 따라 행동하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투신할 때마다,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실천하는 참 신앙인으로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을 찾아 우리의 형제요 벗, 스승을 뵙고 배우는, 그래서 생명의 말씀을 체득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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